가장 힘든 시기에 바닥을 찍고 인간의 바람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힘들게 찾은 마음의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았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강해지는 거예요. 1년이 흘렀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소임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러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내 계획에서 시작된 일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해야 할 거 같은 부담이 있는데, 이 일은 그저 나의 인풋만 들어가면 될 거 같은 마음이었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블로그에 젤리슈즈 공동구매를 열었어요.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이 팔리면서 가방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요. 가방을 만들려고 소개로 첫 직원을 뽑았는데, 기저귀 안 뗀 아이가 둘이라 30평대 가정집 부엌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일과 육아를 분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이 일이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는 예측도 못 했거든요. 그 친구가 아직도 저와 함께 일하는데요, 제가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동안 묵묵히 자기 몫을 해줬어요. 어떤 날은 제가 시장에 나가고 가방 제작 공장에 가면 혼자 집에서 일하다 우르르 하원하는 아이들 맞이하기도 하면서요. 아이들이 조금 크고 평창동 빌라로 옮겨 아래층 집, 위층 사무실로 지내기도 했는데, 택배 물량이 많다 보니 주민들이 많이 불편해하셔서, 매장이 있는 경복궁역 근처로 사무실을 옮겼어요. 사무실 가까이 집을 구하면서 처음으로 집과 일터를 분리해 봤고요. 아이들이 엄마가 보고 싶으면 쉽게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지만 새벽 1~3시까지 회사에 남는 날이 허다했고,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셔서 아이들이 사무실에 들르는 날도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언제든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갈 수 있다는 게 우리에겐 큰 안정감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