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 vol.37 LIFE RECORDER

DEAR MY DREAM TEAM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강현욱 

남몰래 마법을 부리지 않는 이상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다. 그 시간을 유난히 성실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촘촘히 기록하고 좋아하는 걸 말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는 사람. 마케터이자 작가이며 기록자이기도 한 이승희는 오늘도 조금 더 괜찮은 나, 조금 더 단단한 팀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가족이라는 팀, 무구한 사랑을 용기 내 말하고 싶은 드림팀을 위해. 실은 인터뷰하던 날 아기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안정되기까지 비밀로 해달라기에 입을 꾹 다물고 소망했다. 무사히 드림팀 탄생을 알릴 수 있길, ‘용용이’라 불리는 아이가 무탈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길. 세상에 둘도 없을 드림팀 탄생이, 정말로 머지않았다.


INTERVIEW 


이승희 마케터·작가·기록자



하루하루 쓰는 사람

"쓰는 사람이 되어 내 존재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맥없이 살기만은 싫어서 쓰는 사람이란 정체성을 갖게 된 거죠.”

반가워요. 얼굴 보자마자 근황을 묻는 건 조금 심심하니까, 요즘 승희 씨의 키워드를 하나 꼽아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만나서 반가워요. 요즘 제 키워드는 ‘시간’이에요. 이 단어가 중요해진 건 퇴사 이후부터인데요. 2023년 10월 말에 퇴사하고 그 이후부터 제 중심 단어가 되었어요. 앞선 몇 번의 퇴사는 대체로 놀기, 쉬기 위해서였어요. 충분히 쉬다 하루 패턴이 어그러지면 그때야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짬짬이 사람 만나고, 책 읽고, 자고… 그러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죠. 이번 퇴사가 조금 달랐던 점은 ‘놀자!’가 아니라 새로운 일을 해보자고 생각한 거였어요. 근데, 회사의 시간대로 살아왔다 보니 혼자 일할 때 시간을 고려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들어오는 일을 욕심내서 마다하지 않고 받았더니 쉴 수 없는 날이 반복되기 시작했어요.

승희 씨 하루는 48시간 그 이상처럼 보여요. 요즘 하는 일이 정말 많던데….

쉴 새 없이 굴러가고 있어요. 셀프 인터뷰집 《질문 있는 사람》도 나왔고, ‘데스커 라운지’ 공간 디렉팅도 맡았고, ‘리틀빅퀘스천’을 론칭해 잠옷을 만들었고….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겠다 마음먹은 시간이었어요. 퇴사하고 나면 시간이 좀 생길 줄 알았는데 친구를 만나긴커녕 여가 시간도 없었어요. 몸이 버티질 못해서 건강도 해쳤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몇 주간 진행하던 일들도 중지해야 했어요. 건강의 중요성과 더불어 시간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 거죠. 결혼도 했으니까, 이젠 제 시간뿐 아니라 가족과의 시간도 필요한데 미처 그 생각을 못 한 게 아쉽더라고요. 경험을 쌓고 새로운 영역에서 재미를 느꼈지만 동시에 시간에 관해 계속 생각하던 날들이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숨 돌릴 틈이 생겨서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

쉴 틈이 생겨 다행이에요. 얼마 전에 유튜브 〈이승희의 영감노트〉 전시가 있었어요. 그때 “하루를, 매일매일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더라고요. 쓰는 사람이라고 직접 정의하기까지 여러 여정과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우리는 누구나 써요. 계속 쓰죠. 학생일 때도 그렇고 어른이 되어서도 그래요. 저 역시 살아오면서, 회사 생활하면서, 마케팅하면서 계속 쓰는 일을 이어왔는데요. 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몇몇 문장을 읽으면서부터예요.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몰입》에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 없어서.”라는 문장이 있는데, 읽고 나서 저도 그냥 살기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원국 선생님이 쓰신 “투명 인간으로 살지 않으려면 내 글을 써야 한다.”라는 문장도 인상 깊었고요. 이런 문장을 접하면서 쓰는 사람이 되어 내 존재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맥없이 살기만은 싫어서 쓰는 사람이란 정체성을 갖게 된 거죠.

그 ‘쓴다’는 행위는 종이에 글자를 적는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겠지요. 쓰고 나서 남는 어떤 것에 관해서도 들어보고 싶어요. 

원래 쓰는 활동을 하고 나면 해소되는 감정이 제일 컸어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글을 썼으니까요. 일종의 쓰레기통처럼 털어놨기 때문에 일기장을 보면 안 좋은 얘기만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기록하면서 저를 정리해 보는 시간도 가져요. 이제는 기록에 해소와 정리가 모두 담기는 것 같아요. 저를 정리하는 과정을 기록한 게 책 《질문 있는 사람》이 되기도 했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승희 씨가 던진 질문에 저만의 답을 마련하기도 하고, 승희 씨 답을 보면서 한결 친해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죠.

저는 질문을 좋아하고,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질문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게 되더라고요. 칭찬을 받으면 더 잘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래서 자꾸 질문하는 사람이 됐어요. 인터뷰집도 즐겨 보고, 〈유퀴즈〉를 보면서 좋은 질문과 질문하는 태도를 조금 더 깊이 찾아 나가게 됐죠. 에디터님이 보내주신 질문지를 보면서도 “이런 질문 참 좋구나.” 하면서 따로 저장하기도 했어요. 《질문 있는 사람》은 제 메모장에 적어둔 질문 중 100개를 추려 답하면서 만든 책이에요. 좋은 질문일수록 답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하루하루 쓰는 사람 쓰는 사람이 되어 내 존재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맥없이 살기만은 싫어서 쓰는 사람이란 정체성을 갖게 된 거죠. 048 INTERVIEW 처음엔 답하기 쉬운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아침에 듣는 플레이리스트는?” 같은 거죠. 그러다 제 업에 관해 치열하게 해온 고민을 담았고, 뒤로 갈수록 저 자신에 침투하는 질문을 남겼어요. 점점 물음과 답이 깊어졌다고 생각해요.

책에 “블로그가 나를 남기는 도구라면 인스타그램은 내 경험을 남기는 도구, 유튜브는 생각을 전하는 도구, 그리고 책은 다음 스테이지를 열어주는 도구”라고 쓰셨지요. 이번 책이 열어준 다음 스테이지는 어떤 거였어요?

계속 기록을 해온 건 제게 특별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성실하게 무언가를 계속 쌓아가는 데 집중하자 싶었죠. 꾸준히 기록해서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는 게 한동안 제 목표였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요. 책을 꾸준히 내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계속 쓰다 보니 중요한 건 책을 내는 게 아니라 이야깃거리가 있는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이젠 1년에 한 권씩 내기보다는 제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책을 내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보면 제 시각이 조금 넓어졌고, 더 넓히고 싶다는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이번 책을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정리가 된 느낌이에요.

어떻게 정리됐어요?

딱 한 문장으로 말할 순 없지만, 마케터로 살아가는 이승희에서 여유로운 이승희가 된 것 같아요. 결혼을 해서 가족도 생겼고, 여러 회사를 다니며 경험하면서 좀 더 여유를 갖게 된 느낌이랄까요. 김희애, 신민아, 강동원 배우가 〈유퀴즈〉에 출연해서 공통으로 이런 말을 했어요.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문득 그 말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그때 저한테 생긴 게 여유라는 걸 알았어요. 옛날에는 작은 거 하나만 잘못되어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어요. 특히 일할 때. 모든 과정에 전전긍긍하면서 가슴 졸였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선배들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땐 그런 줄도 몰랐는데, 돌아볼 여유가 생긴 이제야 그 선배들처럼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경험이 적거나 어린 친구들이 작은 실수에 겁먹을 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걸,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려줄 수 있게 됐거든요. 여유를 가진 지금이 좋아서 다시 미숙하고 불안한 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최근에는 SNS에 일상을 기록하고 보여주는 것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도 많아요. “인스타그램에는 행복한 사진만 올린다.”라는 말도 어떻게 보면 비슷한 뉘앙스고요. 그런데 승희 씨는 “SNS에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를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요. 이 시선이 참 좋더라고요. 

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SNS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사는 사람으로서의 저를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제 계정을 보고 “어딜 그렇게 부지런히 다니냐.”고 해주는 게 좋거든요. 저는 원래 밖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던 사람이어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SNS에 기록하는 걸 소홀히 하지 않았는데요. 언젠가부터, 아마도 나이를 먹어서인 것 같은데 점점 돌아다니는 게 힘들어지더라고요. 움직이는 게 차츰 굼떠지고 하기 싫어지는 마음도 생겼어요. 팝업이든 행사든 이벤트라면 언제나 관심을 가졌고, 어떤 브랜드가 잘한다더라, 어떤 전시가 좋다더라 이야기가 들리면 찾아가기 바빴는데 침대에 누워 있고 싶은 나날이 늘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더 부지런한 이승희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부지런하다는 건 귀찮음을 이겨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온라인으로 불특정 다수와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하지만, 손으로 일기 쓰는 것도 좋아하시죠. 일기를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졌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쓰셨는데, 어제의 이승희보다 오늘의 이승희는 어떤 점이 나아졌나요?

음….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는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의 존재는 원래 없었고, 아빠는 항상 바빴기 때문에 언니랑만 지내왔거든요. 아빠가 사업을 하셨는데 종종 가족 명의를 빌려 쓰는 일이 생기곤 했어요. 딸이니까 아버지를 돕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까딱 잘못하면 제 신용에 문제가 생기는 일이니 절대 넘기지 않았어요. 매정한 딸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죠. 쭉 그런 마인드로 살아오다가 기록을 공유하면서부터 시각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승희 님 때문에 일기 쓰기 시작했어요.”, “승희 님 보면서 독서하고 있어요.”라는 반응이 좋았거든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제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기뻐서 이제는 저도 타인을 돌보고 위하는 마음을 제대로 갖춰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마음이 생길 때쯤 결혼도 하게 됐죠. 어쩌면 저는 이기적으로 살지 않기 위해 결혼한 걸지도 몰라요. 둘째는 도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생각보다 보수적이라 뭐든 결정하는 데 오래 걸리는 사람이었어요. 퇴사를 결심하고는 큰 계산이나 고민 없이 이것저것 도전했다는 걸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어요. 제가 한 모든 도전에 후회는 없거든요. 마지막은 돈보다 사람을 더 챙기게 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더라도 보수가 넉넉하지 않으면 거절했는데 지금은 사람을 얻고 싶으면 계산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용기로 쌓아갈 팀워크

"저희는 매달 월례 회의도 해요. 아직은 두 사람인 작은 팀이 한 달 동안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우리 사이에 어떤 아젠다가 있었는지 팀처럼 회의를 하는 거예요. 그 모든 내용은 노션에 정리하고요. ”

오늘의 이승희로 나아간 데는 결혼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저는 결혼한 사람들한테 늘 궁금하더라고요. 결혼해야겠다는 결심은 어떨 때 서나요?

저는 결혼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실제로 할 땐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사실 자잘한 걸로 남편이랑 자주 싸우는 편인데(웃음), 결혼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저는 결혼이란 제도와 방식이 좋아요. 음, 무슨 뜻이냐면요. 저희 아버지가 이제 일흔 후반이 되셨는데요. 뇌경색 이후로 일을 그만두셔서 여가 시간이 늘었거든요. 평생 일만 하고 사셨으니까 이젠 여행도 가고 즐기시라고 해도 마냥 누워 계시려고만 하더라고요. 그런 아빠를 보면서 처음으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식구가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움직이게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도 저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남편한테 잔소리도 많이 듣고 다투는 일도 잦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며 저한테 무엇이 부족하고, 저의 어떤 점 때문에 짜증이 나는지 알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제가 모르는 제 모습을 깨우쳐 주니까요.

이번 책에는 유독 가족 이야기가 많아요. 아름답고 화목한 이야기보단 아주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죠. 엄마의 부재, 유년 시절 부모에게 믿음을 받지 못해 불안이 많아졌다는 이야기…. 기록하면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가족 얘기를 자주 하진 않지만 창피해서 안 한 적은 없어요. 익숙하지 않으니까 저한테 자연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어서 꺼내지 않게 되는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없었으니까 엄마라는 단어도 어색해요. 남들이 하는 말을 듣는 건 괜찮은데 직접 말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그러다 결혼하고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생기고 나니까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어머님도 일찍 어머니를 여의셨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저한테 마음이 많이 쓰이시는 것 같아요. 남편과 시부모님의 관계를 보면서도 느끼는 바가 많아요. 남편은 부모님과 사이가 굉장히 좋은데요, 어느 정도냐 하면 매일 통화를 해요. 그걸 곁에서 목격하다 보니까 가족에 대한 감상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엄마라는 존재는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동시에 제 친구 어머니들이 제가 성장하는 내내 저를 챙겨주었다는 걸 깨닫게 됐죠. 친구 어머니들은 소풍날이면 꼭 제 몫까지 김밥을 싸주셨어요. 학교에서 도시락 먹을 때도 제 것까지 싸주시던 친구 어머니가 계셨고, ‘뀰’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마케터 규림이 어머니는 지금도 저한테 용돈을 주세요(웃음). 그 덕에 엄마에 대한 외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것 같아요. 지금껏 저를 지켜준 많은 엄마가 있었단 걸 깨닫고, 자연스럽게 가족 이야기도 꺼낼 수 있었어요.

쓰고 나니까 어때요?

음… 그렇다고 해서 엄마를 알게 됐다거나, 엄마라는 존재를 상상할 수 있게 됐다고 할 수는 없어요. 저한텐 엄마의기준이나 가이드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긴 어렵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받은 사랑을 저만의 형태로 주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해요. ‘나는 엄마가 없었으니까 아이 낳을 생각도 없고 절대 엄마는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저만이 베풀 수 있는 사랑을 넘치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그런 가족을 만들어 나가고 싶고요.

책에 “아이를 독립적인 주체로 키우고 싶다.”고 썼죠.

저는 가정 환경 때문에 독립적으로 자라야만 했어요. 보호자의 도움 없이 학교, 학원 가는 건 물론이고 교복 사는 것까지 저 혼자 결정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 덕에 독립적인 성격이 저절로 만들어졌어요. 성인이 되어 일할 때도 자율성이 중요한데, 이런 성격은 아무리 리더가 마이크로 매니징을 해주어도 바뀌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사랑이나 관심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아니지만 가정 환경 덕분에 장점을 얻었어요. 그래서 제 아이도 독립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요. 더불어 사랑도 많이 주고 싶고요. 보호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관심을 주자는 게 지금 생각이에요. 아이의 인생은 아이 거니까 자기한테 질문도 많이 해보고, 스스로 자기 생활을 가꾸고, 나중엔 돈도 자기 힘으로 벌어서 인생을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에선 의견도 주고, 참고할 만한 이야기도 해줄 테지만 결정은 자신이 하기를 바라요. 물론 남편과 이야기 나눈 건 아니어서 남편 생각은 다를지도 몰라요(웃음). 어쨌든 저는 아이가 부모랑은 또 다른 개성 있는 가족 구성원이 되면 좋겠어요.

가족을 만드는 게 하나의 팀을 만드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쓰셨지요. 좋은 팀워크를 위해 중요한 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질문지를 미리 읽으면서 이 물음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결혼이란 제도 안에 들어온다는 건 혼자보다 같이 살아가는 걸 합의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 양육하는 것 모두 가족이라는 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회사 운영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어떤 회사든 사내 규칙이 있듯 우리만의 규칙을 만들어 보자 싶었죠. 그 첫째가 거실에 둔 원형 테이블에서 대화를 하자는 거예요. 침대나 소파에 늘어져 있으면 제대로 된 대화가 오가질 않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대화 나눌 환경을 위해 원형 테이블을 주문 제작해서 거실에 두었어요. 그 테이블에 앉아 매달 월례 회의도 해요. 아직은 두 사람인 작은 팀이 한 달 동안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우리 사이에 어떤 아젠다가 있었는지 팀처럼 회의를 하는 거예요. 그 모든 내용은 노션에 정리하고요.




와, 재미있어요. 월례 회의는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먼저 결혼한 동료들이 추천해 줬어요. 동료들이 일주일이든, 1개월이든 꼭 주기적으로 회고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조언하길래 믿고 시작한 건데 회를 거듭할수록 저희가 점점 나아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컨대, 이전에는 각자 벌고 각자 지출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어느 영역에, 어느 정도의 금액을 쓰는지 체계적으로 헤아리게 됐어요. 한 달 생활비가 정리된 거죠. 목표를 세웠더니 나아진 점도 많아요. 결혼 초에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었는데, 생활 패턴을 기록하면서 좀 줄이는 게 좋겠다 싶어서 월 2회 이하로 줄이자고 이야기 나눴거든요. 근데 목표를 정하니까 정말 줄여지더라고요. 매달 기록을 하니까 우리가 왜 싸웠는지도 알게 돼요. 한 번 회고하고 나면 다시는 같은 문제로 안 싸운다는 점도 좋아요.

성장을 거듭하는 팀 같아요, 이승희의 드림팀.

매달 성취한 것들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니까 저희도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서로 좋아해서 만나고 같이 살지만 우리 생활과 관계에도 성장이 필요하니까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하게 된 건데 확실히 단계별로 나아지고 있어요. 청소만 해도 그래요. 저는 제가 청소를 남편보다 많이 한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남편은 자기가 더 많이 한다며 억울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친한 부부들이 하고 있는 ‘청소 체크리스트’를 시도해 봤어요. 각자 청소할 때마다 ‘빨래’, ‘설거지’ 하고 목록을 적어놓는 간단한 건데, 누가 더 많이 했는지 한눈에 보이니까 이젠 내가 더 많이 했네, 네가 안 했네, 하고 싸우는 일이 줄었어요.




결과적으로 누가 더 많이 했어요?

남편이요(웃음). 체크리스트를 적으려고 더 하는 감이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승희 씨에게 남편이 새로운 가족이라면 언니는 어릴 때부터 함께해 온 가족 구성원이죠. SNS에서 언니와 함께 여행 간 사진이나 음악에 맞춰 춤추는 영상을 종종 보았는데, 믿음이 깊은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랑 세 살 차이인데 저한텐 언니가 엄마였어요. 어릴 때 제게 언니는 ‘공부 잘하는 언니’였는데 스무 살이 넘어서는 저를 지지해 주는 기둥 같은 사람이 되었어요. 언니는 대학 생활을 몇 년 하지 않은 채 휴학하고 제 뒷바라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거든요. 아빠가 제 고등학교 생활을 지원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가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언니가 20대를 희생한 거죠. 사실 세 살 차이는 엄마 역할을 할 정도로 어른은 아니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저는 성인이 되고도 아르바이트를 언니 집에서 했어요. 조카 봐주는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근데, 아무래도 아이를 돌보는 거다 보니까 생활 반경이나 행동이 제한적이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통제당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답답한 마음에 언니한테 대들었는데…. 아, 절대로 다시는 그런 짓 안 해요. 늘 온화하고 다정했던 언니가 불같이 화를 내는데 그때 제가 결코 이길 수 없는 존재란 걸 알았거든요. 단 한 번 대들고 나서부터 저는 언니한테 무조건 복종하는 동생이 됐어요(웃음).

승희 씨 인생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였군요. 그런 언니와 승희 씨 남편이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참 귀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매는 나이가 들수록 더 친해진단 말이 있는데 정말인 것 같아요. 언니가 남편을 잘 챙겨주는 것도 큰 역할을 하고요. 저는 남편의 부모님께 사랑도 받고 보살핌도 받는데, 우리 가족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게 언니가 많이 신경 쓰였나 봐요.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이 있잖아요. 언니가 장모 역할을 자처해서 남편한테 사랑을 많이 줘요. 잘해줘야 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같고요. 언니랑 남편은 둘 다 내향적이고 예민하고 세심한 편이라 성격도 비슷한데, 그걸 서로 잘 알아요. 그래서 남편이랑 다투었을 때 언니랑 대화하면 풀리는 일이 많아요. 언니가 남편을 대신해서 “아마 너의 이런 태도 때문에 속상했을 거야.”라면서 짚어주곤 하거든요.

계속해서 좋은 팀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거군요. 이성적인 매력이나 남녀 간의 사랑만으로는 평생 사는 건 어렵다고 하셨지요. 사랑 말고 그다음 가치를 생각한다면 어떤 게 떠올라요?

용기요. 《아침의 피아노》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 그 문장을 읽으면서 말한다는 건 중요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한테 사랑을 표현하는 건 용기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용기 있는 편이에요. 남편과 싸우면 항상 용기 내서 사과하곤 하거든요. 솔직히 저도 쉽게 하는 사과는 아니에요. 자존심 상하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누구 한 명이 사과만 하면 금세 풀릴 거라는 걸 아니까 용기 내는 거죠. 사실 가족뿐만 아니라 일하는 데서도 용기는 중요해요. 네이버를 퇴사한 것도, 공간 기획이나 잠옷 제작을 하는 것도 저한테는 용기였어요. 용기를 낸다고 해서 좋은 결과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글 못쓴다는 독자 리뷰 같은 거, 책을 쓰지 않았다면 보지 않아도 될 평가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용기 내서 해온 경험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경험을 넓혀 나가면서 후회하지 않고 싶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책에 이름 이야기가 실려 있죠. 이름을 새로 짓는다는 건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일 같다고 이야기했는데요. 두 번째 이름을 짓는다면, 어떤 의미를 담고 싶어요?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제 두 번째 이름을 짓는 것보다 아이 이름을 짓는 게 더 빠를지도 몰라요(웃음). 아이 이름을 미리 지어본다면… ‘이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요. 이상적이다 할 때의 이상도 되고, 이상하다의 이상도 되고, 시인 이상도 있고….

언젠가 이승희와 이상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네요(웃음). 지금 승희 씨에게는 가족이 전보다 더 큰 의미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의 변화가 궁금해지는데, 하루하루 살다가 어느덧 여든이 되었어요. 어떤 모습일 것 같아요?

부모가 되고 나서 원래 가진 모습들이 지워지는 게 불안했어요.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고심하여 고르고,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찾아 듣고, 내면의 스토리를 공부하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거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는 핑계로 다 귀찮아진 거예요.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서윤정 029 대해서 둔해지는 느낌이 싫었어요.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육체적인 노동과 힘듦보다 정신적으로 도태된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것도 있고, 이 집을 만들면서 해소된 부분도 있어요. 작업에 대한 조급함은 없는데, 표현하고 싶은 단어도 잘 안 떠오르는 걸 보면서 뇌가 노화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들어서도 세련된 미학을 가지고 유연한 사고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죠. 그래서 집이 만족스럽지만 필사적으로 작업실에 가요. 내 손으로 그리고 만든 결과물을 볼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네.’라는 만족감이 삶의 원동력이거든요. 보이는 즐거움을 만들어 낼 때 정말 행복해요.

여든 살 이승희랑 인터뷰하고 싶어요(웃음).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겠지요?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꼭 해요

에어로빅복 입고 나와주실 건가요?

헤어밴드도 하고 나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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