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 vol.39 HOME TO DREAMS

ALL FOR HOME, JUST FOR US

에디터  김여진

포토그래퍼  추정현

언제나 진심을 다해 부지런히 자신의 일을 이어나가는 애린과 옆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지훈. 그들을 닮은 예령과 하령이가 살고 있는 아늑하고 포근한 집.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햇살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온화한 공간에서 더욱 풍성하게 채워진다.

오랜 시간 꿈꿔온 곳

만나서 반갑습니다. 《wee》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대구까지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올포홈이라는 패브릭 브랜드를 운영하는 정애린입니다.대기업에서 전산 시스템을 담당하다가 몇 년 전부터 함께 일하고 있는 남편과 일곱 살 딸, 다섯 살 짱구미 가득한 아들과 함께 대구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기차를 타니까 마치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대구에 자리 잡게 된 계기가 있나요?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 줄곧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결혼하면서 용인에 자리를 잡게 됐어요. 첫째 출산도 용인에서 했는데,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상황도 아니었고 일과 육아를 하다 보니 점점 힘에 부치더라고요. 그러다 남편이 6개월 정도 육아 휴직을 하면서 아이를 보고 전 일을 계속했는데 육아가 쉬운 게 아니잖아요. 결국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대구로 오게 되었어요. 남편은 지방 발령을 신청하고 저 역시 사무실을 정리하고 대구로 내려와 주택을 지으면서 본격적인 대구 생활이 시작된 거예요. 서울보다는 땅값이 낮아 넓은 공간이 필요한 사무실 공간도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죠. 대구가 섬유 도시라 제가 하는 일과 관련된 회사가 많아 직접적인 도움도 많이 받고 있어요.

대구로 오면서 처음부터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네. 사무실과 생활 공간이 한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을 짓기로 결정하고 괜찮은 땅을 보러 다녔어요. 지방이라서 땅 구하고 집 짓는 게 그나마 수월하겠지 싶었는데, 대구에 막 내려왔을 때 부동산이 호황이라 생각보다 집값이 비싸고 마땅한 땅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1년을 넘게 땅을 보러 다녔죠. 그때 둘째 임신 중이라 만삭의 배를 안고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부동산을 다녔어요.그러다 운명처럼 이 동네에 왔다가 확 트인 전망에 반해 계약하고 집을 짓게 됐죠.

‘대구에서 내 집 찾기’가 쉽지만은 않았네요?

맞아요. 땅을 구하고 집이 완성되기까지 정말 긴 여정이었죠.코로나 시기라 첫째는 기관에도 못 가고, 둘째가 태어나고,웬걸요. 공사하는 그해 여름에 거의 매일 비가 왔어요.건축사무소를 내 집처럼 왔다 갔다 하며 지냈죠. 끝이 안 날 것 같은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하네요(웃음).

왜 집을 짓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주택에 살고 싶었어요. 대학교 입학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학기마다 옮겨야 했고, 직장 생활을 하며 자취할 때도 2년마다 이사를 했죠.신혼집도 작은 주공아파트 전세였어요. 내 집에 대한 애착이 컸고 올포홈을 운영하고 아이를 키우며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 있는 집에 대한 그림이 더욱 선명해지더라고요.

주택 생활을 시작하고 일상의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요.

주택살이엔 여러 장단점이 있어요. 가장 좋은 건 아이들이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구 뛰어다닐 수 있다는 점이에요. 집에서 시끄럽다,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웃음).일반 아파트보다는 층고가 높아 답답하지 않고 밤늦게 세탁기를 돌리거나 청소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아요. 계단 오르내리고 청소할 때 힘들기도 하지만 덕분에 운동은 좀 되는 것 같아요. 요일을 맞춰 쓰레기를 분리배출하는 것도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작은 마당을 보면 그 정도 수고스러움은 감수할만하죠.

애린 씨의 첫 집이 궁금해요.

여기로 이사 오기 전까지 결혼 후 약 6년 동안 살던 집만 다섯 군데지만 아무래도 가장 애착이 큰 집이죠. 결혼 초에 부모님 도움 없이, 모은 돈도 많지 않아 과천의 40년이 넘은 10평대 주공아파트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게 참 서글펐어요. 그 집이 재건축을 몇 년 앞두지 않아 집주인이 알아서 꾸미고 살라고 하더라고요. 대학에서 실내 건축을 전공하기도 했고 그 당시 셀프 인테리어가 유행이라 남편과 데이트 삼아 회사가 끝난 저녁이나 주말마다 신혼집을 뜯어고쳤어요. 그런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했고요.

애착이 클 수 밖에 없는 집이네요.

맞아요. 그다음 집은 용인 외곽에 있는 아파트였는데, 그 집도 직접 시공자들을 섭외해 인테리어를 하고 과정을 기록했어요. 힘든 것보다 즐거움이 더 컸죠. 그리고 계속 생각만 해오던 주택살이에 대한 로망을 실현하고 싶어 작은 주택에 들어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했던 것 같지만, 당시 임신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걱정이었거든요. 주택으로 이사하던 날이 한파가 가장 심하던 추운 겨울이었는데 이사를 하고 그다음 날 첫째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힘든 이사와 한파를 이겨내고 자리 잡은 아이가 지금 일곱 살이 되었고요. 그리고 대구로 내려와 두 번의 월셋집을 거쳐 지금의 집에 살게 된 거죠.

와, 많은 일이 있었네요! 인테리어 하는 과정을 남겨두었다니, 부지런하고 세심해요.

2015년부터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셀프 인테리어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고, 그게 사람들 관심을 받아 매거진과 책에도 실리고 올포홈도 시작하게 된거죠. 생각해 보니 무언가 찍고 만들고 소통하는 행위를 좋아한 것 같아요.

전부터 홈 인테리어나 살림에 관심이 많았어요?

부모님이랑 살 땐 “제발 방 좀 치워라!”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청소는 안 했지만(웃음) 자주 침대와 책상의 배치를 바꿔보고 꾸미는 걸 좋아했어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며 주거환경을 전공했죠. 여러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전공으로 일을 하진 못했는데 결혼하고 내 집이 생기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집을 가꾸게 됐어요.

집을 공들여 돌보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애린 씨에게 집은 어떤 의미예요?

전형적인 집순이예요. 밖에 나가면 기가 빨리고 피곤하고 집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이죠. 집은 휴식의 공간이자 취미이기도 해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요.

집에서 보내는 일상은 어때요?

7시쯤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 먹고 남편과 함께 아이들 등원을 해요. 등원 후에 바로 출근하기보다는 오전에 급한 업무를 먼저 보는 편이에요. 그리고 점심 먹고 사무실로 출근해요. 오후에는 아이들 학원 스케줄이 있어 태워다 주고 업무를 마무리하고 저녁 정도에 퇴근하죠. 집에 오면 저녁 먹고,숙제를 봐주거나 놀다가 밤 9시쯤 아이들을 씻기고 잠자리 독서를 해요. 아이들이 잠들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다가 새벽 1~2시쯤 자요.

생산성이 가장 높은 시간이 밤인가 봐요.

맞아요. 아이들 재우고 조용히 느긋하게 밀린 업무를 처리하거나 새로운 일을 고민하기에 참 좋은 시간이죠.

집에서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규칙이나 기준이 있어요?

집에서 일하면 일과 살림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밥을 대충 먹게 되거나, 잠옷을 입은 채로 일할 때요. 그래서 요즘엔 되도록 식사 시간을 지키고 옷도 갖춰 입고 업무를 처리해요. 업무 시작하기 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간단히 집 안 정돈을 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규칙이에요.

아이들은 집에서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이제는 커서 제법 둘이 잘 놀아요.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거실 테이블에서 각자 그리고 싶은 걸 그리고 보드게임이나 블록 놀이도 해요. 첫째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요즘엔 피아노 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요. 둘째는 동요를 배우고 있어서 노래를 같이 부르기도 하고요.

애린 씨가 집을 아끼고 애정을 쏟는 만큼 아이들도 집을 아낄 수 있게 교육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문제는 아직 숙제처럼 남아 있는 부분이에요. 정리정돈을 매번 이야기하지만 일단 무엇이든 다 꺼내고 늘어놓길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거실과 침실에 늘 장난감이나 그림 그리기 도구가 널브러져 있어요. 집 구석구석 아이들 낙서도 많이 보이고요. 아이들이 물감을 가지고 놀아도 수습이 힘들 정도로 엉망으로 놀지만 않는다면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편이에요. 요즘은 그래도 자기들이 물감 꺼내서 놀고 다시 정리를 하긴 하더라고요. 물론 제가 마무리를 하지만요(웃음).

다정하고 세심한 약속

올포홈은 어떤 의미예요?

올포홈은 제가 신혼집 셀프 인테리어를 하면서 지은 이름이에요. 집 구석구석 집의 모든 부분을 직접 만들고 가꾼다는 의미가 담겨 있어요. All for Home, 말 그대로 집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큰 포부를 담아서 지었어요.

멋진 이름이에요!

지금은 너무 거창해 보여 오히려 쑥스럽네요(웃음). 블로그에 셀프 인테리어를 기록한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제품 정보를 많이 물어봤어요. 댓글로 답글을 달고 소통하는 게 너무 재밌었죠. 그때 동대문시장을 다니며 직접 원단을 사서 커튼도 만들어봤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서 ‘내가 만들어서 판매를 해보면 어떨까?’ 하다가 일로 시작하게 됐죠.

가장 먼저 만든 제품은 어떤거예요?

처음 판매를 한 제품은 작은 무릎 담요였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어설프고 서툴렀죠. 나름대로 블로그 방문자 수도 많고 인기 좋은 블로거라고 생각해서 많이 팔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겨우 여덟 개가 팔린 거예요. 그때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것보다는 사람들한테 필요한 걸 만드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포기하기보다는 더 잘해봐야겠다는 계기가 되었군요.

맞아요. 시중에 파는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 동대문 원단 시장을 다니면서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원단으로 침대 패드를 만들어서 판매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게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평일에는 회사를 가야 하니 토요일에 동대문시장 가서 원단 찾아보고 제품을 만들어 소개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판매가 늘어나 회사 일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아 본격적으로 올포홈에 전념하기 시작했고요.

단순히 살림을 좋아하는 것과 일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내 취향과 소비자 취향도 맞아야 하고, 내가 만든 제품의 특장점을 잘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어요. 그리고 생산성이나 제작 가능 여부 등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도 많아서 실제 판매로 이어지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1인 사업이었고 지금처럼 배송 대행 시스템이 없어서 집에서 혼자 제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직접 포장했어요. 이불 수백 개를 혼자서요! 내 이름을 걸고 보내는 제품인데 대충대충 보내고 싶지 않았죠.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에서 이불 들고 오르내리느라 쓰러질 뻔한 적도 있고요. 주말도 반납하고 일했는데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재미있었어요. 이불만 챙긴다고 남편이 몇 번이나 서운해 한적도 있을 정도로요(웃음)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엔 어땠어요?

오히려 아이가 태어나면서 제품군이 확장됐죠. 아이가 사용할 제품을 찾아보니 대부분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패턴의 제품이 많았어요. 비싼 가격에 비해 저가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래서 더 순하고 좋은 원단, 베이직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베이비 사이즈를 만들고 판매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규모도 커지고 만드는 제품도 다양해졌어요.

어린이집 이름표나 어린이집 수건에 새겨진 자수를 보면 올포홈이 정말 다정하고 세심한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어요.어떤 태도와 마음을 제품에 담고 싶나요?

단순히 디자인만 예쁘거나 눈에 띄게 화려한 제품보다는 매일 사용해도 질리지 않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고자 해요. 써본 분들은 내구성과 소재로 칭찬을 많이 하세요. 우리 아이들이 사용한다는 마음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SNS를 보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올포홈의 모델이자 아마도 가장 중요한 고객일텐데요.실제 가족들이 가장 잘 쓰는 제품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아이들이 더 어릴 때는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만드는 제품에 관심도 없었는데(웃음) 이제는 “이거 엄마가 만든 거야? 예쁘다!” 라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줘요. 둘째가 유독 예민해 맨살에 라벨이 닿으면 아예 입으려고도 안 하는데 올포홈 이불을 안고 비비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건 소재가 부드럽고 괜찮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가장 잘 쓰는 제품은 아무래도 침구인데, 매일 덮고 생활하다 보니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이에요.

24년에 올B마켓을 열고 수익금은 기부도 하셨죠. 올포홈은 앞으로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올포홈 제품을 사용하면서 아이들이 잘 자고 엄마도 아이들도 행복하다는 후기들을 볼 때 가장 뿌듯해요. 올포홈이 따뜻하고 행복한 브랜드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사회적으로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무래도 아이들 제품을 판매하다 보니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도 해보고 싶어요. 이건 가장 중요한건데요, 소비자와 약속을 잘 지키는 브랜드요. 좋은 소재를 사용하고 배송 관리도 꼼꼼히 잘하고 작은 부분도 세심하게 살피는 약속이요. 제 신념이기도 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올포홈의 25년도 계획을 들려주세요. 새롭게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올포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도 궁금해요.

주니어 라인에 집중하고자 해요. 소비자분들도 아이들이 커가면서 주니어 침구에 관한 요청을 계속 해주시거든요.주니어부터 성인까지 이어지는 라인업을 생각하고 있어요. 오프라인 공간에서 올포홈 제품을 소개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 볼 계획인데요, 그 첫 시작이 2월 말에 있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예요. 매거진이 나올 때쯤엔 끝났을 것 같은데 부디 잘 마무리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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