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BRANDER

서로의 틈을 메우며 완성하는 이야기, 현대어린이책미술관 


포스트모던 그림책을 대표하는 존 클라센과 맥 바넷은 오랜 시간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왔다. 두 사람은 협업하는 동안 얼마든지 서로를 향해 자리를 비워 두며 앞으로 나아간다. 독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책을 통해 계속해서 질문을 받고, 고민하고, 대답할 거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그 탐험은 자체로 어떤 의미가 된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단독 전시를 열게 된 것을 축하드려요. 소감을 먼저 묻고 싶어요. 

아름답고 압도적인 경험이에요. 한국이 늘 그림책이라는 매체를 가치 있게 여기고, 작가와 작품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건 알았지만, 10년 이상 열심히 작업해 온 것들이 이렇게 한 곳에 아름답게 펼쳐진 걸 보니 정말 멋지네요. 그동안 그림책을 위해 보낸 세월을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존중해 주셔서, 특히 한국에서 전시를 열게 되어서 훨씬 의미 있는 것 같아요. 

보통 한 권의 책을 개별적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때마다 그 책에만 집중을 하게 돼요. 각 각의 책이 한데 모아졌을 때 어떻게 보일지는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 한꺼번에 놓고 보니 곳곳에서 연결점들이 보여 신기해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그 점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전시는 두 분의 초창기 작업물과 작품 세계를 보고, 그림책 관련 활동을 직접 해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요. 전시에서 흥미로웠던 지점이 있다면요? 

이 전시가 그림책에 지적인 관심이 있는 성인과 그림책에 애정을 품은 어린이들 모두의 흥미를 끌도록 구성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두 가지 중 하나만 해내기도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동시에 이뤄냈다는 게 놀라워요. 특히 벽에 걸려있는 작업물들의 구성이나 전시 안에서 관람객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 사려 깊게 기획된 것 같아요. 유희적인 면도 놓치지 않았고요. 이곳에서 가족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보며 정말 기뻤습니다. 

그림책 전시를 열 때는 아주 깨끗하고 딱딱한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번 전시는 재미 요소가 무척 많고, 그게 저희 작업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작업을 떼어놓고 그 자체로만 봐도 재미있고요. 맥 어제 도형 시리즈 의상도 입어 봤어요. 저는 세모, 존은 네모였죠(웃음). 존 저는 동굴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데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어요. 무척 깜깜할 것 같네요(웃음). 그리고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을 모티브로 한 털실 집 짓기 활동도 해 봤고요.


재미있으셨겠는데요(웃음). 두 분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작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작업 중에 의견이 다를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나요? 

물론 서로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가 분명히 있지만, 언성을 높이는 식의 갈등은 없어요. 저희는 언제나 그림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요. 같이 책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고, 그게 저희 우정의 기반이에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데요. 이미 서로를 존중하고 있고, 서로의 관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관점이 맞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수월한 것 같아요. 

협업은 한쪽이 다른 쪽의 영역을 통제하려고 할 때 어렵고 복잡해진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저희는 서로를 신뢰하고 있고, 그림책 안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어요. 각자의 역할을 잘해낼 수 있도록 믿고 가는 편이에요.


단단한 신뢰가 바탕이 되는군요. 그럼 반대로, 함께 작업할 때 생기는 시너지에 관해 말해 주세요.

맥과 저는 밀접한 관계 안에서 협업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작업하는 과정을 볼 수 있어요. 작업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너무 반복되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부분에서 뭔가를 너무 많이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는지, 이 부분은 빼는 게 어떨까, 저 부분을 바꿔보면 어떨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죠. 사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분리되어 있으면 불가능한 일일 거예요. 글 작가는 글만 쓰고 일러스트레이터는 그림만 그릴 테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훨씬 더 열려 있어요. 제가 맥에게 “이 부분은 이렇게 그릴 건데 글을 이렇게 보면 어때?”라고 하거나 반대로 맥이 저에게 “글을 이렇게 쓰고 싶은데 그림은 이런 방향이 어떨까?”하고 제안하죠. 이런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또 한 가지는, 혼자서 작업할 때는 어느 순간 자기 생각에 잠식되어서 지나치게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파트너가 있으면 그런 부분이 완화돼요. 혼자서만 고민할 게 아니라, 상대편이 재미있어하는지 아닌지를 보고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진짜 테스트가 되는 거죠. 

저희는 서로 웃기고 싶어 해요. 존에게 원고를 보내서 재미있어하는지 한번씩 확인하는데요. 존은 정말 재미있으면 바로 메시지를 보내요. 거기서 재미있는 그림이나 레이아웃 같은 것들이 나오기도 하고, 갑자기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하죠. 그런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작업이 이루어져요. 존 혼자만 웃기다면 정말 재미있거나 아니면 미친 거겠죠(웃음). 둘이 함께라면 미치지 않을 수 있고, 미치더라도 함께 미칠 수 있으니 괜찮아요. 작업을 보여주고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돼요. 맥 맞아요. 글 쓰기는 사실 무척 고독할 수 있는 작업이거든요.




함께해 온 작품들은 대개 글밥이 별로 없고, 그림 요소도 복잡하지 않다는 점에서 간결함과 함축성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간결함과 함축성은 연결된 의미 같아요. 하지만 저희가 선보이는 작업물들은 간결함보다는 명확함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글과 그림이 명확하다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지나치고 장황한 설명 없이도 복합적인 것을 전달할 수 있어요. 어린이들은 실은 아주 정교하게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명확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라면 도덕적으로, 감정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복합적인 의미들을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로 예를 들어 묻고 싶어요. 교훈을 주지 않거나 결론짓지 않는 이 책들을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나요? 

도형 시리즈는 사실 책에는 다 설명되지 않은 더 큰 세계관에 속한 작은 이야기예요. 작업할 때 보통 그런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지만, 세모, 네모, 동그라미 캐릭터들이 책이 끝나도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더욱 불명확하게 끝났고요. 캐릭터들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무언가를 배우거나 깨닫는 사건 없이 오히려 일관된 지점을 가져가려고 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변하지 않고, 깨닫는 것도 없지만 책을 읽는 독자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죠. 교훈을 강조하는 책들은 어른들의 힘을 보여주려고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 책에 네가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으니 잘 보렴.’ 하는 식이죠. 도형 시리즈의 결말은 아이들 스스로 책의 의미를 찾고, 책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초대한 거였어요. 이야기나 그림을 보며 자기 자신만의 경험을 불러오고, 그 자체로 의미가 되었으면 했죠. 저는 작가가 나서서 세계를 설명하는 것보다 그런 대화가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설명하지 않아요. 단지 옆에 앉아서 질문하고 싶어요. 저희가 만드는 책은 아이들이 질문하고, 탐구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고 생각해요. 

사실주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이렇게 단순하고 추상적인 캐릭터들이 사실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있을 뿐이죠. 이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뭔가를 깨닫기도 하겠지만 저희는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요. 어쩌면 저는 이 책에 나오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처럼 그냥 그렇게 하루를 보내도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는 각자 다른 질문을 던지고 끝나요. 독자가 스스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지만, 작가 역시 질문에 어떤 바람이나 의도를 담았을 것 같아요. 

도형 시리즈에는 세 가지 재미있는 질문이 있어요. 아마 점점 대답하기 어려울지도 모르는데요. 《세모》의 질문은 ‘그런데… 네모 말이 정말일까?’죠. 여기에 이미 답은 있지만, 아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어서 질문을 남겨 두었어요. 이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사람들이 이런저런 말을 한다고 해도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이야기죠. 네모의 경우에는 ‘그런데… 정말 네모는 천재일까?’라는 질문으로 끝나 ‘예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요. 저는 과연 천재적인 작품을 우연히 만들 수 있는지를 주제로 아이들과 많이 나눴는데요. 아이들의 답변이 예술사에서 일어났던 논의에 맞는 것들이라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동그라미의 마지막 문장은 ‘너도 눈을 감아 봐. 어떤 모양이 떠오르니?’예요. 이것 역시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답이죠. 이 깜깜한 어둠 속에 어떤 모양이 있는지 물었을 때, 아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하트 모양이요!’ ‘다이아몬드요!’ ‘네모가 다른 친구들을 속이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어요. 그런 광경을 보는 건 늘 놀라워요. 어려운 질문이라도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면 곧장 많은 답을 들을 수 있어요. 


두 분한테는 어린이들이 최고의 독자일 것 같네요. 

맥 맞아요. 아이들은 대체로 활짝 열려 있어요. 모든 것을 다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어떤 법칙을 익히고 세계에 대해서 알아가는 자세로 살아가요. 

그래서 어린이들은 뭔가를 모른다고 해서 상처를 입지 않는 것 같아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친구로, 동료로 지내고 있어요. 오랜 시간 동안 서로에게 배우고 느끼는 면도 있겠죠? 

맥 존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가장 근본적인 부분은 제가 세상을 보는 법을 바꿔주었다는 거예요. 존과 함께하면서 주변에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훨씬 더 많이 인지하게 됐어요. 나무나 잎사귀, 돌, 간판, 집… 이런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요. 존은 이 세계의 아름다움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거든요. 덕분에 좀 더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어요. 

존 맥은 저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는 친구예요. 저는 제가 책에서 어떤 것들을 다룰 수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에 대해 두려움이 큰 편인데, 맥과 함께 작업할 때는 제가 가보지 않은 곳도 용기를 내서 가게 돼요.




글  이다은

사진  대어린이책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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