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We Are Family We Are Enough

에디터  오혜진

포토그래퍼   하시시박

경직된 표정과 어색한 몸짓, 모처럼 꺼내 든 사진 한 장에 웃음이 터졌다. 매일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나면 보이는 얼굴들이건만,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느 사진관이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읽은 건 ‘가족’, ‘우리’, ‘기념일’ 같은 상투적인 단어들이었는데 보고 있는 내내 마음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다른 가족의 사진을 봤다. 자그마한 팔다리로 기어보려는 아이의 시간, 포근하고 게으른 이불 속 풍경, 내 입과 네 입이 뻐끔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과는 분명 다르지만, ‘가족 사진’이라는 게 이토록 흔하게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어요? 

H(하시시박) 산속에 있는 친정에서 막 내려왔어요. 아이가 수북이 쌓인 눈을 처음 밟으며 걸음마를 배우고, 고양이와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크리스마스에는 양가 가족들과 선물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눴고요. 평범하지만 풍부한 연말을 보냈습니다.
B(봉태규) 오랜만에 장모님께서 해주시는 밥을 먹었어요. 도시는 아파트뿐이라 간혹 회의감이 들어요. 늘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친정이 충북 영동이라고 들었어요. 서울에 모여 바쁘게 살아도 종종 친구들과 그런 얘길 하곤 해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요. 고향은 어떤 곳인가요? 

H 제 고향은 경기도 화정이고,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예요. 도예가인 어머니가 그곳에서 가마를 짓고 자리 잡으신 후, 최근에 아버지도 내려가셨어요. 이제 친정이 충북 영동 상촌면 고자리가 되어버렸네요. 자연 속에 집이 있고 아이가 뛰어놀며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역시 실감하고 왔어요.

아들 ‘시하’의 이름은 함께 지으셨나요? 엄마의 예명과 비슷하네요. 

H 남편이 지은 태명이에요. 성이 ‘봉’이니까 엄마한테서도 뭔가 따오면 좋겠다고 해서 ‘하시시박’의 앞 글자를 뒤집은 건데, 임신했을 때 느끼던 아이의 캐릭터와 너무 잘 어울려서 그대로 쓰기로 했어요. 나중에 한자 뜻을 붙였는데 ‘때를 아는 현자’라는 의미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하를 낳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네 살 된 아들을 키우는 지인의 말이 문득 떠올라요. “아이는 내 인격을 완성하는 존재”라고요. 정말 그런가요? 

B 바라보고 듣는 것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생각이 달라지니 사람도 달라지고요. 특히 인내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일방적인 소통 중이에요.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만, 어쩌면 아들과 평생 말이 안 통할 수도 있잖아요. 그동안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깊게 들어준 적이 없는데, 자식은 아무리 의견이 달라도 다 들어줘야 할 것 같아요.
H 시하는 이제 막 첫 돌이 지나서 아직 잘 모르겠어요. 아마 두 돌이 넘으면 그럴 것 같아요.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인정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함께 성숙해간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완벽하게 준비된 부모는 없는 것 같거든요.

육아에 대해 늘 말이 많지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시하의 유년기는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작은 바람 같은 게 있나요? 

H 유년기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아픔을 겪을 텐데, 너무 큰 상처는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이고, 이 아이가 갖고 태어난 모습을 잃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봉태규 씨가 공연 매체에서 연재한 에세이를 봤어요. 뮤지컬 <프리실라>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글과 그림이 참 좋았습니다. ‘아빠와 아들, 아들의 아버지’라는 제목도요. 다 읽고 보니 실제로 아버지의 이야기였네요. 

B 그 글은 일종의 반성문 같은 거였어요. 아버지를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추측 내지는 눈에 보이는 것들, 그것조차도 돌아가신 후 생각한 것들이었어요. 쓰다 보니 건조한 이야기가 됐고요. 나중에 제 아들이 그러면 속상할 것 같아요. 나이가 많이 들어도 “아빠”라고 불렸으면 해요.

엄마에 비해 조금은 서툴고 투박해도, 아빠만이 줄 수 있는 세계가 있는 것 같아요. 부자 간의 로망 같은 게 있나요? 

B 아버지와 아들은 자석으로 치면 같은 극이에요. 너무 똑같아서 붙지 못하는 사이요. 사실 로망이라기보다 막연한 생각만 있었어요. 제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분이셨는데, 그래서 전 아들이 아빠를 만만하게 봤으면 좋겠어요. 만만하다는 게 낮거나 쉽다는 게 아니라, 가까운 친구 같은 관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려면 역시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느껴요. 짊어진 숙제죠. 이런 부분은 아내에게 많이 배워요.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아내의 관계는 굉장히 평등하거든요. 자식을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가족 문화가 있어요.

세 사람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이 너무 좋았어요. 이 이상을 끌어낼 수 없을 것 같아 따로 촬영하지 않기로 했을 정도로요.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사진을 제일 좋아하시나요? 

H 앗,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다 좋아요. 뭐가 안 좋을 수가 없죠. 다 예뻐 죽겠어요.

저는 예전 사진을 보면서 우리 엄마한테 이런 표정이 있었나, 내가 이럴 때가 있었나 싶어요. 우리 가족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치부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H 가까울수록 어렵죠. 아버지는 사진가가 아니었지만, 저를 데리고 많은 사진을 찍으셨어요. 그 사진들을 바라보고 자란 게 늘 행복했던 것 같아요.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시절의 그들과 그 행복 안에서 놀던 저, 그 추억 자체가요. 제가 찍는 사진도 시하에게 그런 의미로 힘이 되고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사진 속에서도 드러나지만, 종종 부부의 닮은 스타일이 거론되곤 해요. 요즘 즐겨 입는 옷이 있나요? 

H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는 옷과 자주 빨아도 되는 옷, 아이를 안고도 태가 많이 흐트러지지 않는 옷을 입어요.
B 사실 전 뭘 입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추구하는 것들이 바뀌고 있거든요. 변화라는 게 단번에 소화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내만 괜찮다면 외적으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웃음). 물론 좋아하는 건 있어요. 리바이스 빈티지, 반스 운동화, 뉴발란스 운동화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착용할 것들이에요.

무엇을 어떻게 입느냐가 그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걸 말해주는데요. 단지 패션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입는 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H 촬영할 때 자주 입는 편한 옷이 있어요. 무릎을 자주 꿇어서 다 해졌지만 어쩐지 계속 그 옷을 입게 돼요. 내 마음가짐과 태도가 세월에 묻어 옷에 반영되고, 그런 부분이 쌓여서 스타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남을 위해서 입거나 치장하는 게 아니고 내 모습이 드러나는 거라면 어떤 모습이든 존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B 아내가 가족들의 옷을 입은 적이 있어요. 장인어른의 코트,고모할머니의 스웨터 같은 것들이요. 그 모습을 보고 ‘저게 진짜 멋있는 거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아들에게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물려주기로 했어요. 최근에 LVC(리바이스 빈티지 클로딩) 숍에서 청 재킷을 구매했는데, 나중에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평소 사이즈보다 한 치수 더 큰 걸 선택했고요. 이런 마음이라면 소비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직 어리지만 아이들도 자신의 취향이 있는 것 같아요. 시하가 유달리 좋아하는 옷이 있나요? 

B 아직 없어요. 옷은 아니지만 베개는 있고요. 처제가 선물한 퀼트 베개인데 잘 때 꼭 끌어안고 자요.

새로운 가족이 생기면서 어떤 영향이 있나요. 긍정적인 부분도 많지만, 일적인 제약이나 개인의 자유가 줄었다는 느낌도 들 것 같아요. 

H 가족이 생긴 데에는 긍정적인 부분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저 스스로가 안정이 되고, 남편이나 아이로부터 힘을 많이 얻으니까요. 물론 어떤 제약과 책임은 늘었지만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여요. 그걸 버거워하기 시작하면 애초에 내 선택조차 부정하는 느낌이 들어요. 어떤 마음을 갖는지가 중요하지, 이 책임의 무게가 어떻게 되는지 따지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답도 없고.
B 혼자 있거나 내 마음대로 한다고 무조건 자유롭지는 않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가족이 생기면서 시야가 넓어졌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변했어요. 그만큼 내 세계가 커진 느낌이에요. 그 안에서 더 자유롭다고 느끼고요. 흔히 남자들이 말하는 ‘자유’는 자신의 세계, 그러니까 내가 짜놓은 틀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그게 자유로운 거라고 착각할 뿐이죠.

하지만 때로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세계가 만나 충돌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때 어떻게 조율하나요? 

H 대화밖에 없어요. 대화다운 대화, 술 먹고 하는 감정적인 대응 말고 성숙한 1:1의 대화요.
B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화하다 보면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보여요. 그걸 그냥 인정하면 돼요. 싸움이라는 게 상대를 내 세계관으로 끌어들이려고 할 때 발생하는데, 그건 반대로 상대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잖아요. 공유하고 싶은 걸 말해보고 싫다고 하면 아쉬워하는 정도에서 끝내야지, 더 욕심내면 싸우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두 사람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선뜻 설명하기 어렵겠지만 묻고 싶어요. 

B ‘아내’요. 아들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그게 전부예요. ‘박원지’라는 사람이 저와 결혼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가족이란 없을 테니까요. 아내의 비중이 백 퍼센트라고 할 수 있어요.
H The most importan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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