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 vol.5 TOY

내 안의 '약한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을 때 

에디터  김현지

글  이소영

내 안의 ‘약한 나’에게 안부를 묻고 싶을 때 

Fixativ 병과 함께인 인형, 1929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알아냈다. 한국 어린이들의 장난감에 대한 조사였는데, 소년과 소녀의 장난감 판매 비율 중 어느 쪽이 더 높은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이 오고갔다. “작년 한 해 소년과 소녀의 장난감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팔렸을까요?”

사회자가 질문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부 소년이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장난감’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자동차, 총, 로봇이다 보니 당연히 소년들의 장난감이 잘 판매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소녀들의 장난감이 소년들의 장난감보다 14배 이상의 판매량을 보인 것이다. 판매량의 대부분은 바로 ‘봉제 인형’과 ‘관절 인형’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가 가지고 놀던 곰 인형, 바비, 쥬쥬, 미미 같은 인형들은 여전히 장난감의 세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달리고 있었다. 물론 이 조사에서는 인형을 소녀의 장난감으로 구분 지었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요즘 내 주변에는 소년들이 더 인형을 좋아하는데 말이다.

우리에게 인형의 의미란?  


어린이날 선물을 언제 마지막으로 받았나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올해가 어린이로서는 마지막 해니 어린이날 선물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문구점에 가서 새로 나온 바비 인형 시리즈를 하나 골라 행복함과 아쉬움 사이를 오가며 집에 왔다. 여전히 우리 집 서재 중 한 칸에는 그때 모은 인형들이 가득하다. 성인이 되면서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그때마다 버리지 못한 내 인형들은 이십 년 넘게 내 서재 서랍에서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을 입고 엉킨 머리를 하고 자기들끼리 부둥켜안고 살아간다.

몇 달 전 라섹 수술을 했다. 수술대에 누우니 걱정과는 반대로 떨고 있는 내 심장 소리에 내가 놀랄 정도로 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인형을 주었다. 작고 허름한 곰 인형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곰 인형을 꼭 안고 안정적인 마음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 병원 수술실에서는 곰 인형이 늘 인기라고 한다. 우리는 ‘인형’을 왜 좋아할까? 2010년 호텔 체인점 ‘트래블로지’가 영국 성인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영국 사람들의 3분의 1 이상이 곰 인형을 안고 잔다고 한다. 이유는 편안하게 잠들 수 있고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의지할 존재’와 ‘보드라운 존재’가 필요하다. 인형들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불안을 달래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는 인형을 통해 거칠어진 마음을 달래고, 현실에서 만나는 좌절을 극복해왔다.

오스카 코코슈카 자화상과 인형, 1921 

화가들의 자화상 속 인형의 존재  


화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1886~1980가 그린 자화상에는 같은 인형이 몇 번이나 등장한다. 오스카 코코슈카는 구스타브 말러의 부인이기도 했던 알마 말러Alma Mahler와 연인 사이였다. 그는 그녀에게 실연을 당한 뒤 알마 말러를 닮은 큰 인형을 주문해 그녀로 생각하고 늘 데리고 다녔다. 극장이나 음악회에 갈 때도 두 명 표를 끊어 인형을 옆자리에 앉히고 공연을 봤다. 그에게 인형은 사랑했던 여인 알마 말러 그 자체였다. 그는 그녀가 떠난 뒤 빈자리를 인형으로 채우며 마음속 허기를 달랬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그녀 대신에 그녀를 닮은 인형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행동을 많은 사람들은 괴상하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슬픔을 인형으로라도 대신할 수밖에 없던 그의 구멍 난 마음은 말러를 닮은 인형만이 메워주었다. 오스카 코코슈카가 인형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은 이상 그의 행동을 비난할 자격은 사실 우리 중 누구에게도 없지 않을까?

이젤과 함께한 자화상, OK at Easel, 연도미상 

화가 루돌프 바커Rudolf Wacker|1893~1939의 자화상에도 인형이 등장한다. 그는 1차 세계 대전 때 군 생활을 했고, 나치의 문화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해 오랜 시간 심문을 받았다. 러시아의 감옥에서 포로로 5년간 투옥 생활을 하다가 풀려났지만, 전쟁의 공포는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그는 게슈타포Gestapo의 지속적인 심문과 집 수색 도중 두 번의 심장 발작을 겪어 마흔 여섯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속에는 유독 인형이 많이 등장한다. 한국에 많이 알려진 화가가 아니라 그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지만 작품들을 쭉 살펴보면 인형을 수집하는 사람처럼 여러 정물화에 등장시킨다. 인형과 함께 있는 루돌프 바커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면 슬픈 눈동자를 지닌 그와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다. 그 시절 그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음에 미안하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고깔모자를 쓰고 주근깨가 잔뜩 난 인형과 강아지 인형을 보며 안도한다. 다행이다. 그의 곁에 인형이 함께여서. 적어도 누군가와 함께인 그의 자화상이라 마음이 놓인다.

제임스 티소, 공원 벤치, 1882, 캔버스에 유채, 99.1×142.3cm, 개인소장  

오스카 코코슈카, 루돌프 바커 두 사람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둘 다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다. 세상은 나 혼자 안간힘을 써서 살아간다고 늘 친절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한다고 저절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화가의 삶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오스카 코코슈카는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사랑에 힘겨웠고, 루돌프 바커는 나치의 억압에 시달리며 고통받았다. 나라 안팎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매일 시끄러웠던 두 사람에게 인형은 의지하고 소통할 존재였을 것이다. 정서적 상호작용을 해야 할 누군가가 없거나, 소통이 서툴 때 우리는 인형을 만난다.

마음이 거미줄처럼 복잡해 어린 아이처럼 단순해지고 싶을 때가 자주 찾아온다. 이럴 때는 내 안에 있는 약해진 내게 안부를 묻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인형들을 꺼낸다. 부디 내 안의 소녀가 여전히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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