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 vol.5 TOY

Parole And Langue 

글·사진  이자연

PAROLE AND LANGUE 

장난감에 관한 두 가지 단상 

랑그Langue가 보편적이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라면, 빠롤Parole은 개인이 가진 자신만의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다. ‘장난감’이라는 단어에서 긴 줄기를 잇는 두 가지 빠롤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장난감으로 

오후를 채우던 아이  


90년대 중·후반, 한창 개발 중이던 우리 동네는 신도시로 급부상하고 있었다. 키 작은 다세대 주택들이 빽빽하던 곳은 널따란 아파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이곳저곳 새 빌딩을 기다리는 빈 공터가 많았다. 평화, 대동, 태평 같은 거국적인 이름을 가진 아파트 사이로 신식 초등학교들이 완공을 다 끝내지 못하고 문을 열었고, 부족한 교실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어 아이들을 반겼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던 초입, 이웃과의 문턱은 지금에 비해 몹시 낮아서 주민끼리 많은 것을 나누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가족들 대부분은 외벌이였다. 직장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가 당시의 표준치인 것처럼 흔했다. 그 사이에서 우리 집은 맞벌이였다. 물론 신발이나 옷을 파는 일을 하는 어머니들이 종종 있었지만 우리 엄마처럼 회사에 소속돼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말을 다시 하자면, 집에 혼자 남은 어린 여자애와 함께 있어줄 어른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당시 우리 집의 흔한 풍경은 반들반들한 장판 위로 아무도 없는 텅 빈 거실이었으니.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나름 빠르게 흘러가도록 도와준 건 장난감이었다. 머리를 염색할 수 있는 미미 인형, 눕히고 세울 때 눈을 감고 뜨는 똘똘이(이 인형 사준다고 해서 따라 나갔다가 치과에 갔었다), 인형용 포대기와 유모차, 소꿉놀이 세트, 종이 인형들. 혼자 여러 연기도 했다. 화가 난 엄마가 되었다가, 용서를 비는 딸도 되고, 게으른 가게 점원이거나 까다로운 손님이기도 했다. 날마다 놀이에 참여하는 장난감의 개수만큼 연기하는 인물의 수도 늘어났다. 후에 어른이 되어 안 거지만, 장난감이랑 이야기하는 내 모습을 뒤로 하고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 일터로 향한 엄마는 길거리에서 애기 울음소리만 들리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몰래 울었다고 했다. 어린 나는 차마 눈치 채지 못했지만, 아마 장난감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을 어른인 엄마는 알았을 것이다. 많은 것이 발전하고 개발되고 있는 와중에 어른의 부재를 장난감이 채워주던 시절이었다. 나의 오후는 그렇게 흘렀던 것 같다.

민들레. 내 애착 인형의 이름은 민들레였다. 노란 곰이었는데 털이 내 곱슬머리처럼 꼬불꼬불했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부재가 두려움이나 공포로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모습으로 추측하건대 내가 흘려보낸 오후들이 마냥 아무렇지도 않았던 건 아니었던 듯싶다. 아마 어린 시절의 내가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온,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부분으로 남은 것처럼. 그리고 그럴 때면 민들레를 푹 안고 싶어진다.

“They mean a lot, to me.” <토이 스토리3>에서 앤디가 말했다. 나는 작별을 하는 앤디와 우디를 보고 펑펑 울었다. 장난감이 아이의 모든 것을 대신해줄 수는 없겠지만, 마주한 두려움을 ‘별 게 아니야’라고 외면할 수 있게끔 도와준 건 맞다. 분명 혼자 있는 게 두려웠을 거다. 하지만 두려움에 집중하지 않게, 그래서 진짜 공포처럼 다가오지 않게 해준 게 장난감이기도 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장난감으로 

마음을 채우는 어른  


성장기에 장난감 의존도가 높았냐고 물으면 딱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독립적이었냐고 물으면 그것도 딱히 아닌 것 같다. 나이를 충분히 먹고 많은 일을 혼자 해나가면서 장난감은 더 이상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 외에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다. 새 학기 시작하기 전 곱슬머리를 꼭 매직으로 펴줘야 했고, 예쁜 옷을 파는 쇼핑몰을 전전했고, 좋아하는 남자애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장난감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규어였다. 나는 만화광이었는데 당시 유명한 만화책은 모조리 섭렵했다. 몇몇 책은 참지 못하고 소장도 했다. 그런 관심사가 실물 소장 욕구로 이어지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의 첫 피규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센, 하쿠, 유바바 세트였다. 유바바의 올린 머리 사이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을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그때 나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건 어른의 장난감이야. 어른만이 누릴 수 있는 거라고!” 가격이나 질적 차이나, 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것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의 놀이로 편승하고 싶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어? 그러면 관련 피규어를 어떻게든 찾아냈다. 피규어가 없어? 그럼 비슷한 2차 생산물을 찾아냈다. 영화든 책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실물로 느끼는 어른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구글 검색 능력도 현저히 늘었다. 전 세계 방방곡곡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폴란드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폴란드에 오기 전전 국가에서 100만 원가량을 도난당했다. 예산은 급격히 줄었고 여행자들에게 관대한 사람들의 집에서 숙박을 해결하기도 했다. 크라쿠프Krakow에 머물던 어느 날, 광장을 여유롭게 거닐다가 작은 장난감 가게를 발견했다. 그냥 구경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니 글쎄, 심슨 가족들이 레고로 버젓이 나와 있는 거였다. 당시 한국에는 ‘심슨 레고판’이 나온다는 이야기만 무성했고, 실물은 수입되기 전이었다. 이걸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리저리 보면서 무엇을 아껴야 이것을 살 수 있는지 고민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해리포터 레고도 있나요?” 그러자 점원이 해맑게 웃으며 ‘해리포터 레고판’을 보여주었다. 이럴 수가, 그냥 가게 앞에 이자연 들어오라고 플래카드 걸어두지 그랬어요. 해리포터 레고판 세트는 해리포터, 스네이프, 말포이가 귀여운 마술봉을 들고 서 있었다. 해리 이마의 번개 상처는 내 마음을 빼앗았고 나는 휘청거렸다. 오직 하나다. 하나만 살 수 있다. 해리냐, 심슨이냐. 심슨이냐, 해리냐. 내가 이마에 내천 川 자를 그리고 있자 점원이 웃으면서 잠시만 이리로 와보라고 손짓했다. 그곳엔 심슨 레고가 있었다. 다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랜덤형이었다. 하나씩 고를 수 있지만,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대신 가격이 세트에 비해서 아주 저렴했다. 이거라면 둘 다 살 수 있다. 단, 위험성이 있다. 같은 게 다섯 개 나올 수 있으니까.

그때였다. “음… 이건 마지야. 머리가 만져져.” 세상에! 그녀는 나의 구세주였다. 이어서 그녀는 랜덤 봉투를 손으로 주물럭주물럭 하며 다섯 명의 구성원을 내게 챙겨주었다. 심지어 모든 가족 구성원을 정확한 ‘이름’으로 호명했다. “이건 호머야. 이건 바트, 이건 리사. 이건 매기. 그리고 이건 마지야.” 그녀는 덕후다. 냄새가 난다. 이건 덕후 냄새야.

그 뒤로도 나의 여행 소비는 늘 비슷했다. 오사카에 가서 20만 원이 훌쩍 넘는 ‘지브리 스튜디오’ 제품을 사고, LA에서는 디즈니랜드에 가서 두 손 가득 피규어를 털어 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인형을 재배치할 때마다 생각한다.

짜릿해. 늘 새로워. 어른 덕후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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