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 vol.5 TOY

To. My Doll 

에디터  박선아

TO. 

MY DOLL 


나의 인형에게  


권나무의 <아무것도 몰랐군>이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한때 전부였던 생각들이 창고에 인형처럼 버려질 때.”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늘 곁에 머물던 장난감이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통 모르겠다. 한때 전부였던 것들은 정말 버려지는 것일까. 사라졌는지, 버려졌는지 모를 인형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전해본다.

김민주 

영상 작가 및 감독 


엄마가 찍은 사진일 거야. 햇살이 좋은 오후에 남편과 첫 아이가 사이좋게 낮잠을 자는 모습이 예뻤던 거겠지. 삼십 년이 지난 지금 그 곁에서 함께 잠들어 있는 널 발견했어. 이 시기의 사진들 속에 네가 곧잘 등장하는 걸 보면 아마 내가 널 한창 좋아하고 있었나 봐.

무지개빛깔의 보드라운 털이 좋았을까? 너에게 부모님이 나 대신 지어 준 이름이 있었을까? 넌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무것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의 꼬리를 이어가다가 문득 많은 것이 내게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어. 아빠의 팔을 베고 자는 낮잠, 엄지손가락을 물고 자는 버릇, 너를 곁에 두어야 비로소 편안해지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야.

잘 설명할 수가 없어. 분명히 나와 아주 가까이 있던 것들인데 낯설고, 지금은 아무 필요도 없어진 것들인데 그리워. 다시 만났을 때 널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주저하게 될 것을 미리 용서해 줘. 나는 아무래도 어른이 되고 만 것 같아.

강혜란 

포토그래퍼  


난 기억력이 좋지 않아
다행히 병적이 아니라 약간 발달이 더딘 거 같아.
사진 속에 널 보고 널 기억해냈어!
안녕? 내 기억 속의 인형아~♡
4차원 세계가 열리면 널 만나고 싶어♡
만날 수 있는 그 날까지!

송재욱 

건축사무소 디자이너 


안녕!
너와 처음 만난 날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는 아직도 잘 기억하고 있어. 널 언제 내가 버렸는지는 기억은 못 하지만, 삼촌 장례식장에서 네 생각을 많이 했어.

지금 나는 사진 속에 널 업고 있는 꼭 나만 한 조카가 있는 삼촌이 되었어. 내가 조카를 볼 때 느끼는 사랑을 삼촌도 느꼈을까? 아마 넌 알고 있겠지. 편지를 쓰다 보니 널 버린 이유가 생각났어. 같은 반 좋아하던 여자애가 곰돌이 푸우를 좋아한다고 해서 푸우 인형을 사고 널 버렸어. 용서해줘! 사내놈들이 다 그렇지 뭐. 푸우는 요즘 조카가 잘 같고 놓아. 그 녀석도 곧 있으면 같은 반 여자애한테 푹 빠지게 되겠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꽤 기대돼.

아무튼 난 그렇게 나이를 먹고 있어 넌 어때? 혹시 삼촌이랑 같이 있어? 같이 있으면 안부 전해줘! 나한테도 조카가 생겼고. 아직도 좋아하는 여자한테 정신 못 차린다고!

윤예지 

일러스트레이터  


안녕,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곱슬머리 인형아.
아기였던 나는 아기가 가지고 싶어서 너를 등에 업고 다니고 재워주고 그랬었는데 32년 후의 나는 아기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뚝 다 사라졌지 뭐야!

사진 속의 나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서 여기저기 데려가고도 싶었고, 젖병도 물려주고 싶었고 자장자장도 해주고 싶어 했더랬지. 지금의 나는 매일매일의 일과로도 너무 바빠서 그런 마음이 정말 뚝 다 사라져 버렸어. 세상 참 모를 일이지. 살다 보면 마음이 또 바뀔 날이 있겠지. 어디에서든 잘 지내고 있길 바라. bye!

이해인 

이너웨어 디자이너  


안녕? 너무 오랜만에 너에게 안부를 물어. 나는 그동안 많이 자랐고. 이해라는 단어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알 정도의 어른이 되었단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도 반 토막 잘린 모습이 마지막인 것도 엄마에게 무심하게 버려도 된다고 했던 마지막이 생각나서….

가만히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애정표현이셨던 아버지 덕에 어릴 적 사진이 많아. 사진기 앞에 솔직했던 때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보단 멀뚱히 카메라를 보고 있는 사진이 많더라. 근데 너와 함께한 사진 속의 그 날은 자신감이 넘치고 신나 보였어. 의기양양한 모습이었지.

기억을 더듬다 보니. 커온 시간이 무색해 질만큼 네가 더 선명하게 생각나는 것 같아. 고마웠어 잊지 않을게. 안녕!

전수빈 

게스트 하우스 강류재 대표  


바비언니
저녁 먹으라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왕왕 울릴 때까지, 꼬질꼬질한 얼굴 위로 땀 삐질 흘리며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지요. 정강이 무릎 팔꿈치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험하게도 뒹굴었더랬어요. 헌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 활기찼던 날들 사이사이, 방정맞은 기억의 틈새에 참으로 얌전한 추억들도 조용히 떠오르는 거라 거기서 나 오랜만에 언니를 봤어요. 쭉쭉 빵빵한 몸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푸른 눈, 구불구불 사방으로 뻗친 백금발 머리까지 그때만 해도 참 낯선 이국의 얼굴이라 이제 와 말하지만 사실 난 언니 예쁜지 잘 몰랐다오. 검은 눈에 동글동글 부드러운 이목구비의 ‘미미’가 더 예뻤던 것 같은데….

그래도 언니 그 날씬한 허리띠를 꽉 귀고 찍은 사진이 여기저기 많은 것을 보면, 내가 언니 참 좋아하긴 했던 모양이오. 그래 확실히 듬성듬성 숨어 있는 기억들을 더듬어 보면 게 중 아직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어요. 예쁜 색깔이지만 부스스하고 뻣뻣해서 빗질하기 영 힘들었던 그 머리칼. 왜인지 안쪽이 푸른색이었던 늘씬한 다리가 볼 때마다 신기했던 어린 나(지금 생각해보니 스타킹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언니랑 놀 때 늘 곁에 있던 내 어린 날의 단짝 친구 바비언니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그 시절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 선명하게 빛났다 사라집니다.

바비 언니, 영원할 줄 알았던 우정은 빛바래 흩어진 지 오래고, 땀 냄새 풍기며 뛰놀던 동네는 재건축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동네 뒷산에 오를 때도 손 꼭 잡고 함께 했던 언니는, 내 유년 시절의 모든 보물들이 그러했듯이, 깨달은 순간 이미 기억 속에서만 남아 있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쓸쓸한 만큼 사랑스러운 여정이었습니다. 이미 마흔은 훌쩍 넘었을 언니 모습이 문득 궁금해지네요.어느 문학가의 마들렌 한 입처럼, 나를 찬란하게 빛났던 그 시간으로 데려다준 푸른 다리의 내 옛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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