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관찰자
이 일과 더불어 헤세는 오랫동안 나비 수집에 대한 욕구를 잊고 산다. 성인이 되어 우연히 방문한 프레다에서 ‘엔토몰로그’라 불리는 나비채집가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수집에 대한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 덕에 알프스불나방을 둘러싼 수집가들의 아이러니를 목격했다. 그는 목표가 특수할수록 더욱 맹목적인 열정에 빠지고 객관적인 사실에 눈이 멀어진 수집가들을 이렇게 기록했다.
“이들 중엔 평소에는 호감을 갖고 사귈만한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이곳에서는 서로들 자기들의 목표에 지나치게 정열적으로 몰두하여 광적으로 지내기 때문에 그런 일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희귀종을 잡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동료에게 그것을 발견한 장소를 엉뚱하게 일러주게 마련인데, 그러면서도 동료 중 한 사람이 자신의 뒤를 몰래 밟아 그 장소를 알게 된다는 것을 모른다.”
– 헤르만 헤세, <알프스불나방>, 《나비》
나비 수집가들의 채집에 동행했다가 모두 허탕만 치고 돌아온 날, 헤세는 운 좋게 숙소에 날라 들어온 알프스불나방을 보게 된다. 그는 나비를 잡지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아름다움을 지켜보다 불을 껐다.
이후 헤세의 아이들이 나비를 채집할 나이가 되자 그의 어린 시절 열정도 불꽃처럼 되살아났다. 아이들의 나비 사냥에 따라나서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고, 아들들은 훗날 아버지와 함께했던 나비 원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얼마 후 처음으로 나비 컬렉션을 만들었고, 인도네시아 여행 뒤에는 그 수집이 더 풍성해졌다. 사십 대가 되자, 헤세는 나비 자체의 다양성에 관심을 두며 마침내 고요한 관찰자가 된다. 더는 나비를 좇지 않고, 나비가 발산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며 행복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