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WARM WELCOME

에디터  김수정

포토그래퍼  HaeRan

서로의 꿈에 관해 묻고, 그 꿈을 이뤄보자며 용기를 나눠주는 관계가 있다. 《wee》 매거진 김현지 편집장과 디지털 에디터 WEEDI들은 아낌 없는 환대와 포용 속에서 한 뼘 더 성장했다. 아이를 보살피며 정작 자신은 희미해진다 느껴질 때면 wee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고는 충만해진 기분으로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 관계의 원동력이 무언지 가만 살펴보니 온기가 식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 배려의 마음씨가 보인다. 다정하고 씩씩한 이들은 어느덧 함께 꾸릴 마을을 꿈꾸고 있다. 누구나 꿈을 말하고, 누구에게나 용기를 나눠주는 마을을.

가깝고도 스스럼없이

김현지《wee》편집장, 아홉 살 이룸이 엄마 

김은진《wee》마케터, 다섯 살 이안이 엄마 

임현진 WEEDI 4기, 작은 식당 노닌의 대표, 열세 살 소율이 엄마

박미지 WEEDI 1기, 키즈 브랜드 얼쓰 디자이너, 네 살 지유 엄마 

바쁜 와중에 시간 내줘서 모두 고마워요. 먼저, WEEDI의 출발에 관해 이야기 나눠볼까 해요. 다들 어떤 마음으로 WEEDI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미지 코로나가 심할 때였어요. 아기가 막 돌이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워낙 엉덩이가 가벼운 사람이라 집에만 있기 힘들었죠. 그러다 WEEDI 1기 모집 공고를 본 거예요. 첫 오프라인 회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아기 낳고 13개월 만에 처음으로 혼자 한 외출이었거든요. 연남동 지하도를 지날 때마다 그때 그 마음이 다시금 떠올라요. 오늘도 그날이 생각났어요. 

현지 맞아. 미지 씨는 연남동 지나갈 때마다 들러서 뭘 주고 가곤 했어. 

미지 너무 자주 연락드리면 계속 나오셔야 하니까 연락을 줄여 나갔죠(웃음).

현진 줄곧 내 것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컸어요. 프리랜서로 일을 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해야 하니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앞으로 뭘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안 해본 걸 질러보던 시기였죠. 집단에 소속되어 본 적이 없어서 WEEDI도 당연히 안 될 줄 알았어요. 면접도 난생처음 봤거든요. 줌으로 봤는데, 브런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일하느라 땀에 절어 있어서 급하게 집으로 가 앞머리만 대충 감고 셔츠로 갈아입었어요. “아, 내 인생 너무 재밌다.” 하면서요(웃음). 

현지 아, 그런 비하인드가! 

은진 저도 비슷했던 게 아기 낳자마자 코로나가 시작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못 나가는 생활을 2년 정도 하다가, 그사이 나름 아이와 갈 만한 곳들을 다녔죠. 공신력 있는 곳에 이 내용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wee 체험단인 WEEBEE에 선정돼 열심히 리뷰했고, 곧바로 WEEDI 3기 모집 공고가 올라와서 지원했죠.


편집장님은 어떤 마음으로 WEEDI 커뮤니티를 꾸리게 된 거예요?


현지 wee는 종이 잡지를 통해 가정을 꾸리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져왔어요. 매 호 가족의 삶과 밀접한 주제를 정해서, 살고 싶은 방식을 시도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요. 인터뷰이들뿐 아니라 모든 가족에게는 저마다의 상황에서 선택한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고 믿기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 가이드를 주고 밖으로 끄집어내 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매거진 너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WEEDI 커뮤니티에서는 따뜻한 소속감이 느껴져요. 다른 곳에는 없는 WEEDI 커뮤니티만의 매력은 뭐예요?


현진 개인이 가진 것을 더 빛나게 해주는 분위기예요. 회의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첫 회의 때 정말 긴장했거든요. 그런데 말 그대로 환대를 받았어요. 아, 환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알게 됐죠. wee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도 환대, 다정이에요. 

미지 맞아요. 저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따뜻함이에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글만 봐도 어쩜 이렇게 다정한가 싶어요.

현지 오그라들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미지 전혀요! wee 안에는 따뜻한 수용과 무언의 신뢰가 있어요. 제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항상 “해보세요!”라고 응원해 주세요. 조직에 소속되어 뿌듯함과 자신감을 느낀다는 건 드물고 어려운 일이잖아요. 억지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wee에서는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은진 모두 공감해요. 엄마의 취향을 많이 억누르고 아이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게 육아의 어려움이기도 한데, 같은 취향을 나눌 수 있는 그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함을 느껴요.

현진 제가 wee 모임만 다녀오면 남편에게 충만한 감정을 느끼고 왔다고 조잘조잘하거든요. 남편이 wee가 무슨 종교라도 되냐고. (일동 웃음) 어떻게 충만이라는 단어가 나오냐고 해요. ‘아멘’이 아니라 ‘위멘’이라고요(웃음).


이렇게 비슷한 마음씨와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것도 참 신기한 일이에요. 편집장님만의 사람을 보는 기준 같은 게 있나요?


현지 저도 신기해요. 몇 가지 질문으로 wee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거 말고는 직감을 따르는 편인데, 4년여를 돌아보니 기준이 있긴 하네요. 엄마 중에는 아이를 키우는 지금이 행복하지만 내가 사라지는 것 같아 불안한 이들이 많아요. wee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발견, 시도, 연결’이거든요. 사소한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사람, 나답게 시도하고 행동하고 싶은 사람을 환영해요. 다정한 태도를 가지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성원들이면 좋고요. 콘텐츠 에디터로서의 기준은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비슷한가예요. 매거진은 단행본과 달리 텍스트와 이미지가 하나의 덩어리로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거든요.


은진 씨는 wee에서 가장 많은 역할 변화가 있었죠. WEEBEE에서 WEEDI로, 37호부터는 마케터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기분이 어때요? 


은진 지난해 편집장님과 새로운 시도와 변화의 시작점을 마케터로서 함께했어요. 편집장님은 어떻게 보면 상사이기도 한데 그런 느낌은 전혀 없어요. 서로 배려하는 거리를 잘 유지하면서 든든한 동지애를 갖고 함께 걸어가는 사람을 얻었다는 느낌이 커요. 

현지 저는 누군가의 경력보다는 이 일을 할 만한 성향의 사람인지 먼저 살펴보거든요. 마케터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은진 씨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어요. 

은진 손 편지를 써 주셨죠. 

현지 어머 내가 그랬어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요(웃음). 

은진 작은 선물과 함께 주셨어요. 업무 이야기는 그다음에 했고요. 제가 마케터 일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먼저 주셨어요. 그리고 마케터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죠. 편집장님이 평상시에 질문을 많이 하시는 편이에요. 


어떤 질문들을 하나요?


은진 스스로 영감을 받은 질문이 있으면 지인에게 물어보고 답 듣는 걸 좋아하세요. 가령, 자신을 한 단어로 말하면 무어라 말할 거냐, 같은 질문을요. 일상생활을 하며 누가 이런 질문을 해줘요. 쉽지 않잖아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또 한 번 자신을 돌아보게 되죠. 주변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야 좋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거죠. 편집장님의 그런 결이 매거진에도 고스란히 담기고, WEEDI를 꾸려 나가는 데도 영향을 끼치는 듯해요.

현지 저는 은진 마케터와 WEEDI들이 피드백 주는 게 참 귀해요. 경력이 쌓일수록 편하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어느 날 WEEDI 줌 회의를 마치고 은진 씨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본인이 관리자라면 저처럼 이야기를 안 했을 것 같은데 하나 배웠다고요. 그러면 저는 ‘아, 그랬구나. 이런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계속해 줘야지.’ 하면서 행동을 돌아보게 되죠.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에요. 

은진 공개된 자리에서 내 글을 평가받고, 평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편집장님이 리뷰해 주시는 방식에 늘 감명받아요. 저 같으면 또렷하게 말하기 위해 직설적인 단어를 쓸 듯하거든요. 편집장님은 같은 이야기라도 부드러운 단어로 어떤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얘기하세요. 그게 참 좋아요.

현지 내가 그런지 몰랐어요.

현진 편집장님을 만나고 다정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전에는 오글거린다고 생각했거든요. 편집장님이 피드백을 준 모든 대화에서 다정의 힘을 느껴요. 저는 말투가 톡톡 튀는 편인데, 편집장님을 보며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느끼죠.


 wee를 만나고 달라진 부분이네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wee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는지 궁금해요.


은진 저는 늘 제가 이성적이고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편집장님이 태도에 배려와 친절함이 있으면 차가운 게 꼭 나쁜 건 아니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덕분에 저 자신을 수용하고 인정하게 되었죠. 

미지 다정함 안에 있으니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어요. 또 다른 변화는 글을 정리해서 쓸 수 있게 됐다는 점이에요. SNS에 글을 올리더라도 다시 돌아보고, 정리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현진  wee그림책잔치에서 고수리 작가님 글쓰기 수업을 듣고 그 자리에서 저 혼자 울었어요. 마음이 쭈글쭈글하던 시기여서 글도 참 우울했거든요. 누구라도 한 명은 울겠지 했는데 아무도 안 울었어. (일동 웃음) 엄청 부끄러웠는데, 울고 나니 정말 후련한 거예요. 그걸 계기로 매일 아침 일어나 글을 썼죠. 점점 제 마음의 주름들이 펴지는 걸 느꼈어요. 확실히 wee를 만난 후로 남이 가진 걸 부러워하기보다 제가 가진 것에 집중하게 되었어요. 감사한 일이죠.





따뜻한 연대 속에서 함께 변화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관계처럼 보여요. 그렇게 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꿈을 이루게 된 일들도 있을 듯한데요. 


현진 편집장님이 꿈에 대해 많이 물어보세요. 제 꿈은 ‘내 가게를 갖는 것’이라고 대답했는데, 꿈이 이뤄졌죠. 항상 마음에만 품던 걸 말로 하고 나니 저지를 수 있는 용기가 생겼어요. WEEDI를 하면서 워낙 질문을 많이 받다 보니까 생각을 구체화하는 힘을 얻게 되었나 봐요. 

미지 저도 WEEDI 회의 때 꿈 이야기를 하다가 지유 생일날 사진전을 여는 게 꿈이라고 말했어요. 지유가 코로나 때문에 돌잔치를 못 했거든요. 머릿속에만 있던 걸 입 밖으로 말하고 나니 엄청난 힘이 생기더라고요. ‘에이, 그래도 어떻게 사진전을 열겠어.’ 싶다가도 한 번씩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실행력이 솟구치는 거죠. 만약 그 자리에서 꿈을 말하지 않았다면 해볼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말이 갖는 힘이 엄청나다는 걸 느꼈어요. 

현지 미지 씨가 지유 사진전을 연다고 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은 안 갈 수가 없었어요. 사진전이 미지 씨의 꿈인 걸 아니까. 하루에 딱 네 시간만 하는 사진전이었는데 모두가 갔죠. 저도 매거진을 만들면서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끼는데, 타인에게서 그 실체를 봤다는 것이 큰 보답처럼 다가왔어요. 한 사람이 꿈을 이룬 걸 눈으로 본 거잖아요. 사진전 끝날 때까지 집에 못 갈 정도로 감동했어요. 이제 문 닫는다고 할 때 질척이며 나왔죠(웃음). 

은진 확실히 편집장님에게는 실행에 물꼬를 트게 하는 힘이 있어요. 

현지 저도 경력 단절 기간이 2년 정도 있었기에 WEEDI들의 욕구와 간절함을 잘 알고 있었죠. 그 갈증이 wee를 만들며 해소됐어요. 제 좌우명이 ‘다정하고 용감하게’인데, 용감이 저한테는 시도예요. 매거진을 하면서는 일단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해결하자는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WEEDI들의 시각, 삶의 궤적을 받아들이면서 감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해요. 그분들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지지하는 과정이 즐겁고요. 주체적으로 삶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wee가 발판이 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면 먼저 손을 내밀고 싶어요.






WEEDI 활동을 하며 어려운 순간들은 없었어요? 


은진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거나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마감은 매주 돌아오고 마감을 위해 아이와 뭔가를 하거나 어딘가를 가야 했죠. 사적인 감정에 요동치지 않으려고 산책을 많이 했어요. 집이 산속에 있는데, 각자 열심히 자라는 자연을 보며 ‘어찌 됐든 다 지나간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며 마음을 다잡았고요. 한편으로는 이게 자기 몫을 온전히 해내는 어른의 자세라 생각했어요. 

현진 wee에서 배우는 것이 크다 보니 늘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런 마음과 제가 가진 체력, 시간적 한계의 간극이 참 어렵더라고요. 

미지 처음엔 제가 모아놓은 것들로 재밌게 하다가 어느 순간 콘텐츠의 한계를 느꼈어요. ‘나 이제 뭐 하지?’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죠. 일터에서도 그런 마음을 느낄 때가 있는데, 이제는 스스로 환기하려고 노력해요. 지금 아니면 못 간다면서 콘서트나 전시를 억지로라도 노력해서 다녀요. 내가 나를 리프레시해 줘야 하니까요.

현지 저는 원래 꾸준한 사람이 아닌데 책임감 때문에 지금까지 일하는 듯해요. 늘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죠. 정기구독자들이 있고,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있으니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얼마 전 나를 둘러싼 단어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요, 그중 하나가 결핍이었어요. 어릴 때는 결핍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했는데, 아이를 키우고 결핍이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는 즉흥적인 성향에다, 아이가 두 살 때부터 일을 하다 보니 늘 부족하고 놓치는 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제가 비워둔 부분을 스스로 채우고 성취감을 느끼더라고요. ‘아, 내가 다 채우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배웠어요. wee도 그런 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서로 채워주며 동그라미가 되는 거죠.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 많은 걸 못 했을 거예요.


이번 호 주제가 기록이에요. 다들 기록을 좋아하나요?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요. 


은진 기록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일상을 남기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항상 있었어요.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거쳐 간단하게라도 남기는 건 꾸준히 해왔죠. 지난 SNS를 살펴보다가 젊은 날을 마주하면 반가움이 커요. ‘내가 이런 깊은 생각을 했구나.’ 싶고요(웃음). 기록은 훗날 되돌아봤을 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요. 

미지 손으로 하는 기록을 하고는 싶은데 잘 못 해요. 그래서 저만의 기록법을 찾은 게 사진이죠. 휴대전화는 항상 손에 있으니까요. 저만 볼 수 있는 아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서 육아일기처럼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문득 인스타그램이 언제까지 있을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SNS 기록에 의존하지 말자는 생각에 필름으로 바꿨어요. 아이에게는 어떤 기록법을 남겨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올해부터 아이와 함께 일력을 뜯고 있거든요. 뜯은 종이가 아까워서 그 뒤에 아이에게 오늘 하루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그려보라고 해요. 

현진 소율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블로그를 했어요. 주변에 육아하는 친구들이 없어 말할 곳이 없었거든요.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블로그에 모든 걸 기록하고 제 감정도 쏟아냈죠. 생각을 나누다 보니 저와 비슷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제가 기억하지 못해도 블로그엔 다 남아 있어요. 기록이 좋은 경험을 가져다준 거죠. 소율이 어릴 적 모습을 필름 카메라로 찍은 걸 모아서 독립 출판 책으로도 냈고요. 지속해서 기록하는 방법으로는 SNS를 가장 좋아해요. 

은진 싸이월드 시절엔 제가 추천하는 전시, 음악 같은 걸 큐레이션 해서 월 단위로 꾸준히 기록했더라고요. 20대였을 때는 문화적인 자극이 크게 와닿아서 글도 장문으로 많이 써놨고요. 지금은 감정에 집중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자꾸만 검열하게 돼요. 

현진 맞아요. 예전엔 뭐라도 남기려고 했는데 지금은 SNS에 올렸다가도 자고 일어나서는 ‘아, 지워야겠다.’ 이런 마음이 들어요. 

미지 맞아, 맞아. 완전 저 같아요. 

현진 요즘 고민이에요. 솔직하고 유쾌하게 남기고 싶은데. 

현지 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더 그럴 것 같아.

현진 맞아요. 노닌을 알고 계시다가 제 개인 계정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럴 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현지 오피셜한 무언가가 생기면 조심하게 되죠. 저는 저의 가치관이 wee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조심스러움이 있어요. 모든 콘텐츠가 무해할 수는 없는 건데 누군가 이걸 보고 상처받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해요. 유쾌하고 가볍게 하면 좋을 텐데 자꾸만 진지해져요. 내가 좋게 느낀 거 있으면 가볍게 이야기 걸고 싶은데 말이죠. 

현진 얼마 전 개인적인 일이 있었는데 이걸 너무나 인스타그램에 말하고 싶은 거예요. 괜히 가게를 운영하는 데 편견이 생길까 조심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인스타그램이 아닌 다른 SNS에 글을 남겼는데 거기엔 댓글이 안 달리는 거죠. 그래서 금방 시들었어. 

미지 소통 중독. (일동 웃음) 

현지 저는 작년에 기록에 관해 새로운 세계를 열었어요. 이 노트들인데요. 

일동 와! 

현지 꾸준히 기록하고 싶다는 바람은 늘 있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하면서 분명 고민을 하긴 했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거죠. 작년, 매거진 방학을 결정하면서 무척 혼란스러웠어요. 앞으로 뭘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물음이 차올라 매일 쓰기 시작했어요. 복기하고, 나만의 시선을 정리해야 다음이 보이겠더라고요. 생각이 정리가 안 될 땐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려봤어요. 묘비명을 무엇으로 할지, 장례식장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무슨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지도 적어 보는 거예요. 그렇게 기록하면서 계속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거죠. 흔적을 남긴다는 건 잘 살고 싶은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이잖아요. 혼란이 가신 뒤에 이 기록들을 훑어보며 또 다른 키워드와 영감을 발견하거나 성취감을 느끼기도 해요.


하루 중 어느 시간에 기록하나요? 따로 시간을 내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현지 이룸이가 어느 순간부터 영어 학원 숙제를 대충 하고 놀더라고요. 혼자만 숙제하는 게 싫었던 거죠. 그래서 아이가 숙제할 때 저도 옆에서 기록하거나 책을 읽었더니 이제는 같이 숙제도 하고 뭔가를 쓰기도 해요. 물론 저도 매일 쓰지는 못해요. 그래도 기록하는 습관이 없어지는 건 아니어서 며칠 안 썼더라도 ‘다시 쓰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다들 어떤 아이였나요? 어떤 아이가 커서 WEEDI가 되고 매거진을 만드는 걸까요? 


은진 겉으로는 조용한데 머릿속으로는 엉뚱한 게 많아서 조용하게 사고 치는 아이였어요. 그걸 드러내지 않다 보니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시려고 엄마가 저를 세심하게 살피셨던 것 같아요. 엄마랑 전시나 공연을 보고 오면 말은 없어도 그림 같은 걸 그리곤 하니까요.

미지 지유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릴 적 나는 어땠지, 엄마는 어땠지, 생각해요. 김영하 작가가 어린 시절 떠났던 여행을 기억은 못 해도 순간의 기분은 기억난다고 말했잖아요. 저도 어릴 때 엄마랑 바다에 정말 많이 다녔는데 그 순간의 기분이 떠올라요. 그래서 지유와 최대한 많은 곳에 다니면서 좋은 기분을 남겨주고 싶어요.

은진 맞아요. 엄마가 항상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 수고 많았다면서 꼭 안아주시고는 오렌지 주스를 주셨어요. 이런 따스한 경험들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죠. 저도 엄마와 떨어져 혼자 뭔가를 하고 돌아온 아이를 꼭 안아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육아는 지금의 나, 내 또래인 그 시절의 엄마가 함께 걷는 느낌이에요.

미지 저는 일곱 살 크리스마스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창문 틈이 열려 있는 거죠. 엄마가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가셨나 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잊히질 않아요. 얼마 전 크리스마스에 베이킹파우더로 산타 할아버지 발자국을 만들고 지유에게 보여줬더니 “뭐야, 산타 할아버지 왜 신발 신고 들어와?”라고 하는 거 있죠(웃음).

현진 어릴 때 집에 애가 넷이 있었어요. 전쟁 통이었죠. 부모님이 다정한 성향이 아니었거든요. 옆에 가면 혼날까 봐 늘 두근거렸어요. 제가 엄마가 되니 좋은 점은 그 시절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예요. 엄마가 왜 그렇게 날카로웠는지 알겠더라고요.

현지 저는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마련해 놓은 것들을 많이 따르며 자란 편이에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충분히 찾지 못한 10대를 보내고 등 떠밀리듯 대학교에 갔어요. 그 여파로 20대 때 크게 방황했어요. 이룸이에게 뭔가를 제공해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제 어린 시절 영향이 커요. 아이가 유년 시절 많이 시도하고 실패해 봤으면 좋겠어요. 아이 혼자 엉뚱한 짓도 해보고, 그 틈 안에서 나름의 생각도 해보면서요.


wee 커뮤니티를 wee 마을이라고 부른 걸 보았어요. wee의 다음 목표는 뭐예요? 


현지 가족이 함께 자랄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wee는 육아 매거진이 아니라 가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에요. 인간의 성장 단계에서 누구나 가족과 함께 부대끼는 시기가 있잖아요. 어린이의 유무로 가족의 경계를 정하고, 공간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길 바라서 wee그림책어워드, 그림책잔치, 키즈 마켓, WEEDI 바자회 등을 시도했죠. 부모와 아이뿐 아니라 할머니와 손녀, 삼촌과 조카, 아이가 없는 친구들끼리 방문하는 걸 보면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wee 마을은 우리와 함께 발견하고 시도하고 연결하며 성장한 이들과 채우고 싶어요. 조식은 현진 WEEDI가 맡고, 샵에서 wee가 발견한 위브랜더를 알리고, 정원에서는 키즈 마켓이 열리거나 미지 WEEDI처럼 가족의 일상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획 전시를 여는 식이죠.


무형의 연대가 공간으로 확장되는 셈이네요. wee가 만들어갈 세계가 벌써 기대돼요. 긴 시간 동안 나눈 오늘의 대화도 따뜻하고 즐거웠어요. 


은진 몰랐던 이야기를 더 깊게 나누게 되어 좋았어요. wee라는 연결 고리는 있지만 매일의 삶을 나누진 않거든요. 활동 중간에 서로를 조금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그게 또 굉장히 깊게 와닿고요. 배려하고 거리와 예의를 지키면서 은은하게 지속되는 관계죠.

현지 공간은 시일이 좀 걸릴 거 같아서 온라인으로 wee 마을을 먼저 열어볼 거예요. 매거진이 전하는 이야기를 함께 읽고 해석하고 쓰고 만들면서 매일의 시간이 녹아버리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도하고 겪어낸 시간으로 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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