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CAPTURING MY BEAUTIFUL MOMENTS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장수인 

회화 작가 서윤정은 손바닥만 한 정사각에 어느 것 하나 같지 않은 선과 색을 담아낸다. 그의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살아 움직이는 패턴 사이를 활기차게 유영하다 이내 아득하고 고요한 심상이 되고 만다. 최근 작가는 작업 여정을 담아낸 집을 완성했다. 하얀 스케치북 같은 집에서 그날그날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기쁨을 선명하게 하고 웅크리고 있는 순간에 빛을 불어넣으며, 붙들고 싶은 순간을 네 살 아이와 함께 그린다.


INTERVIEW 

서윤정 아티스트


그림으로 들춰본 사사로운 기록

"그림은 저에게 기록이에요. 그림을 보면 그때의 감정,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거든요.”

입구부터 감탄하며 들어왔어요. 집 곳곳을 살펴만 봐도 하루가 다 갈 것 같아요. 

어서 오세요. 결혼 후 아파트에 살다 제가 꾸리는 첫 주택이라 신경을 많이 썼어요.

공간을 둘러보기 전 소개를 해주세요.

서울을 기반으로 시각 예술 작업을 하는 서윤정이에요. 회화 작업을 하면서 파생된 이미지로 실용적인 제품을 만들어서 ‘서윤정회사’에 소개하고 있어요. 네 살 서현이랑 남편과 함께 지내요.

원래 가족이 지내던 공간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사연이 있는 집인가요?

할아버지가 17년가량 혼자 사신 집이에요. 지난가을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저 샹들리에가 할아버지 흔적이죠. 친정도 작업실도 단독주택이어서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주택의 삶이 그리웠어요. 아이에게도 그 경험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죠.

재작년, 어라운드 매거진 기사로 작업실에서 인터뷰했잖아요. 당시에 살던 집은 작업실에 비해 타협을 많이 해 아쉬웠다고 했죠? 나다운 집에 대한 갈망이 컸을 거 같아요

맞아요. 제가 집에 애착이 큰 편이거든요.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집을 구현하고 싶어서, 저의 온 관심과 신경은 이 집을 나답게 만드는 것에 맞춰졌어요. 제 갈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남편과 아이의 취향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죠(웃음). 남편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투덜대지만, 서현이는 방이 생기고 좋아하는 장난감도 많아서 좋아해요

주방으로 연결되는 계단의 카펫이 정말 아름다워요. 직접 그린 그림인가요?

이 부분에 고민이 많았어요. 주방의 타일 바닥과 거실의 나무 바닥을 어떻게 연결할까, 하다가 그 사이를 잇는 계단에 카펫 디자인을 해보기로 한 거예요. 입체화하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는 편이라 종이에 스케치하고 색칠한 뒤 접어보면서요. 제가 그리고 색칠한 스케치를 직조 회사에서 제작해 줬어요. 집을 완성하고 나서, 그 스케치들이 작업실 어딘가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작년 개인전을 준비할 때 갤러리 측에서 작품으로 넣어보자고 해서 전시에도 선보였지요.

테라스로 나가는 세면대, 수납장, 욕조에도 직접 페인팅한 타일이 있네요. 집이 또 하나의 작업 같은데요?

그걸 원했어요(웃음). 내 작업이 돋보이면서 나의 취향으로 우리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기를 바랐어요. 제가 도자기 작업에 관심이 많아요. 아이 욕조에는 예전에 만들고 남은 타일을 두르고, 수납장 상단에도 제가 그린 그림으로 포인트를 줬어요. 아름다운 집을 갖게 되어 좋은 카페, 쇼핑, 외식에 대한 욕구가 많이 줄었어요. 이 집의 아름다움을 혼자 조용히 누리는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죠.

작업실과 집이 좀 멀어졌는데요, 요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나요?

오전에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저는 버스를 타고 작업실에 도착해요. 원래는 정원의 식물에 물을 주고, 새로 핀 꽃을 살펴보다가,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마시며 일을 시작했는데, 오가는 시간이 길어서 흐름이 깨졌어요. 버스에서 내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아침을 해결하는 게 요즘의 루틴이네요(웃음). 작업실에 온전히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세 시간 정도라서 오자마자 급한 작업을 해요. 그리는 시간이 너무 귀해졌어요.



개인전에는 그해 그린 그림이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언제 이 작업을 다 하셨을까, 성실한 분이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주로 몰아서 작업하는 편이에요. 갤러리에서 다채로운 작업으로 전시를 열어보자고 하셔서, 짧은 시간에 작업량이 많았죠. 작업실에서는 페인팅 위주로 그리고, 집에 와서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같은 고체 재료로 작업했어요. 12시나 1시까지 그림을 그리다 보니 아이도 늦게 잠든 적이 많았어요. 제가 작업에 집중하는 동안 옆에서 엄청난 그림을 그렸더라고요.

그림과 함께한 여정이 인생의 반을 넘었어요. 학부 때 그림들은 간결하고 고요한 분위기라면, 지금은 채도가 높고 생기가 넘쳐 보여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건 대학 때부터인데요, 한창 미니멀리즘에 빠져서 힘 빼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거든요. 공간을 표현하는 제일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수단에 심취해서, 다른 형태는 안 쓰고 점, 선, 면으로 표현하곤 했어요. 식탁에서 내려다보이는 그림의 제목이 ‘균형’인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학부 시절, 6개월 정도 고민하면서 완성했죠.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연구하고 깊이 몰입하면서 작업했어요. 미니멀 아트 작업을 하다가 대학원을 영국으로 갔는데, 눈에 보이는 이미지들이 더 다채롭더라고요. 점이 커지면서 동그라미가 되고, 네 선이 모이면 네모, 세 선이 모이면 세모가 되잖아요. 면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도형으로 넘어갔고, 조금 더 선명한 색깔을 쓰게 됐어요.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밖으로 더 발산해야 하는 분위기라 색을 쓰는 일이 더 잦아졌고, 저한테 기대하는 그림들이 생겨나면서 현재의 작업들이 나타났죠.

지금껏 그린 그림들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그림은 저에게 기록이에요. 그림을 보면 그때의 감정,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거든요. 시카고 학부 시절 그림들은 차분한 느낌이 많은데, 도시 자체가 무채색 도시 같았어요. 여름에는 햇빛 쨍쨍한 날씨지만 검정, 하양, 회색 건물이 주를 이루고, 사람들 옷도 대체로 얌전해요. 대학원을 다닌 영국은 구름 낀 날씨가 많고 비가 자주 오긴 하지만 거리의 대문이나 버스의 강한 색이 환경과 대조를 이뤄요. 학교나 도시의 길가에서 ‘빨강이 이렇게 예쁜 색이구나.’를 느끼고 그 감각을 흡수했죠. 그때 작업을 보면 당시 분위기와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지금도 색을 쓰지만 똑같이 해보려고 해도 그 느낌이 안 나요.

공간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편이네요. 가족과 함께 산 단독주택의 기억, 공부하던 도시의 감각, 공간을 둘러싼 감정이 작업의 주재료인 거 같아요.

맞아요. 그때와 지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제 모든 작업은 공간의 상상에서 출발한다는 점이에요. 열아홉 살 때부터 타국에서 혼자 살면서 집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었어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기도 했고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안식처였기에 추억도 깊죠. 당시의 그리움과 공간에 대한 갈망을 그림으로 그려내요.

공간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는 편이네요. 가족과 함께 산 단독주택의 기억, 공부하던 도시의 감각, 공간을 둘러싼 감정이 작업의 주재료인 거 같아요.

맞아요. 그때와 지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제 모든 작업은 공간의 상상에서 출발한다는 점이에요. 열아홉 살 때부터 타국에서 혼자 살면서 집은 언제나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었어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기도 했고요.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안식처였기에 추억도 깊죠. 당시의 그리움과 공간에 대한 갈망을 그림으로 그려내요.

‘blueprint’ 안에는 메모도 곁들였어요. 꿈꾸는 집을 상상하며 테니스장, 수영장을 그렸는데 실제로는 수영도 테니스도 잘하지 못한다는 메모가 귀여웠어요. 작가님 그림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품보다 사사로운 기록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blueprint 작업들은 제가 꿈꾸는 공간을 기록하려는 의도였어요. ‘홈메이드 별장Homemade Villa’은 초록색 테니스 코트와 핑크빛 타일의 수영장이 있는 공간을 상상하며 그렸죠. 그 외 작업들은 계획해서 그리기보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걸 페인팅하는 편이에요.

정사각판에 그린 그림이 많은데요, 작가님에게 정사각형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학부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수학에 조예가 깊었어요. 그 친구가 말하길 정사각형은 네 변의 길이가 같고 네 각의 크기는 모두 90도인데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상적인 공간이라는 거예요. 친구가 말해준 정사각형의 개념이 제가 지향하고 싶은 바와 맞았어요. 저에게는 유토피아 같은 느낌이에요. 같은 길이와 각도에서 오는 균형과 질서가 안정감을 주죠.


최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개관전도 열었죠? 대비가 뚜렷한 패턴들의 다채로운 움직임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수성아트피아는 대구의 구립 문화 예술 공간이에요. 야외에 어린이 예술 교육 체험센터로 아테이너를 만들면서 전시와 공간을 채우는 작업을 제안받았어요. 작년 전시를 준비하면서 IAH 갤러리 측과 ‘이 그림처럼 실제 공간을 꾸미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는데, 기회가 온 거예요. 어린이들이 머물면서 영감을 받을 공간이어서, 채도 높은 색과 다양한 패턴을 제안해 주셨어요. 제가 가진 모든 색을 총동원해서 ‘사각, 상상 아지트’라는 주제로 담았죠.

색과 재료에 대한 감각은 어떻게 키웠어요?

타지에 홀로 머물면서 사는 집부터 수건 한 장까지 스스로 골랐던 게, 좋아하는 재질, 색, 아이템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또 여행 가서 여기저기 걸으며 다양하게 보고 좋아하는 것도 많이 사본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게 워낙 많았거든요. 어머니가 “몇 개만 사야 해.”라고 설득하기보다는 원하는 걸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자제하는 능력을 기르진 못한 거 같아요(웃음). 가장 쓰고 싶은 색을 먼저 쓰고, 블루 톤으로 할지, 핑크 톤으로 할지 톤을 정해요. 그런 다음 ‘이 색과 뭐가 어울릴까?’ 고민하면서 나머지 색들은 즉흥적으로 쓰는 편이에요.

그리움, 안정감을 떠올리며 그림을 이어간다고 했어요. 매일 느낀 걸 잘 담아두는 편인가요?

한창 그림에 빠져 있던 20대 땐 텀블러에 정말 많은 기록을 했어요. 좋아하는 작가와 우연히 들은 음악, 그것과 연결된 다른 예술을 넘나들면서 열심히 기록했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기록하고 싶은 욕구는 있지만 그때만큼 활발히 하진 못해요. 대신 요즘은 서현이랑 같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저녁을 먹고 한 시간 정도 각자 그림을 그리는 루틴이 생겼어요.

주로 어떤 내용을 기록하고 싶어요? 

저는 시각적 자극을 많이 받는 편이라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기록해요. 우울할 때는 끄적이고 싶은 동기가 전혀 없어요. 내가 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을 때 이미지와 간단한 글을 남기는 걸 선호하다 보니 가장 성실히 하는 기록 툴은 인스타그램이에요. 너무 많은 이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게 단점이지만요.

붙잡아 두고 싶은 어제의 아름다움은 뭐예요?

인터뷰 준비로 양재 꽃시장에 갔어요. 저는 절화보다 난을 좋아하는데요, 마음에 드는 난을 보고, 작업실에 두면 얼마나 예쁠까,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어요.




나를 지키며 아이를 기르는 나날

"내 손으로 그리고 만든 결과물을 볼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네.’라는 만족감이 삶의 원동력이거든요. ”

어린 시절 그림과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을 거 같아요.

손재주가 없어서 만들기를 못했어요. 엄마 말씀으로는 그림도 특출나게 잘 그리거나 좋아하지 않았대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책상 밑에 책과 장난감을 쌓아서 아지트 같은 거 만들고 의자를 뒤집어서 인형 집을 만들며 놀곤 했어요.

아이를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나요?

아니요. 서현이는 저와 기질이 아주 달라요. 제가 서현이만 했을 때의 이야기를 엄마나 이모에게 들어보면, 혼자서 부산스럽게 노는 건 비슷한데 서현이가 저보다 훨씬 외향적이고 에너지가 넘쳐요.

서현이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데요? 자유로운 색감과 꼼꼼한 표현력에 놀랐어요. 

유아들은 글을 못 쓰니까 그림을 주로 그리잖아요. 혼자서 잘 노는 편인데, 장난감이랑 놀다가도 그림을 자주 그리더라고요. 엄마처럼 섬세하게 못 그려 속상해하면서도 계속 그려요. 제가 개인전 준비할 때 옆에서 오래 그리더니 요즘은 색과 형태가 더 자유로워졌어요. 그림을 가르쳐 봐야 하나, 유학을 같이 가야 하나,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어요(웃음).

기특하네요. 서현이 전시 존을 만들어 주는 건 어때요?

서현이가 그린 그림을 냉장고에 많이 붙여놨거든요. 근데 제 전시에 오고, 다른 갤러리에도 가보더니 자기 그림도 자석이나 테이프 같은 거 없이 깨끗하게 붙여두고 싶다는 거예요(웃음). 서현이 그림이 딱 이때만 그릴 수 있는 훌륭한 그림 같아서, 작업실에서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도 초대해서 같이 즐기고 싶어요.

그때 저도 초대해 주세요(웃음). 서현이랑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좋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아이랑 같이할 때 더 기쁘잖아요.

아직은 제가 좋아하는 걸 나누는 시간이 짧은데, 점점 느는 거 같아요. 저는 서현이를 위해 뭔가를 한다기보다 최대한 제 스케줄에 아이를 맞추려고 애쓰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카페, 갤러리, 작업실에 데리고 가면서요. 항상 출발 전에는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같이 밥 먹고 카페에서 케이크 먹고, 주변 가게들 구경하다가, 갤러리에 들른 뒤 작업실에 가서 저는 그림 그리고 서현이는 서현이대로 노는 상상을 하며 집에서 나서요. 그런데 차에 타는 순간 현실은 다르구나, 깨달아요. 카페에서 10분 있었는데 나가자고 하고, 편집숍 구경하다가 재미없다고 투덜대는 아이를 달래야 해요. 이것저것 만지니까, 저도 집중을 못 하고 나오죠. ‘다시는 얘랑 여기 오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가고, 계속 시도해요. 얼마 전 미술관에서 서현이의 감상 포인트를 발견했어요. 작은 마름모에서 점점 커지는 마름모들이 레드, 그린, 블루, 화이트로 배치된 페인팅을 보면서 “엄마 이거 꼭 엄마 작업실 화장실에 있는 그림 같아.”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제 작업실에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의 ‘Fluttering Hearts’ 포스터가 걸려 있거든요. 작업실을 살펴보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고, 작품을 보면서 유사성을 끄집어내 얘기해 주는 모습도 정말 기뻤어요. 현실과 이상이 달라도 열심히 다닌 보람이 있네요(웃음).




아이는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흡수하며 살아가게 마련이에요. 세 식구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호불호가 강해서 옷을 살 때도, 입을 때도 항상 제가 골랐어요. 부모님이 늘 일을 하셔서 제가 하고 싶은 건 혼자 알아보는 일이 많았고요. 남편은 저와 반대 기질에다가 회사원이라 성실하고 규칙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여행이 너무나 중요한 가치인데, 남편은 밖에 나가 활동하길 꺼려서 모든 선택지에서 여행이 가장 후 순위인 사람이죠. 서현이가 아직 어리니까 장거리 여행은 포기하며 살고 있어요. 다행히 서현이는 저와 관심도가 비슷해요. 그림 그리는 거, 아름다운 곳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가끔 ‘엄마랑 이렇게 앉아서 차 마시면서 책 보면 좋겠다.’ 같은 이야기도 하고요. 다만, 저는 새로운 공간이나 전시를 탐색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서현이는 어린이집에 안 가면 하루 종일 집에서 노는 걸 좋아하고,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중요시해요. 그건 남편과 비슷한 거 같아요.

서현이도 취향이 확실한 거 같아요.

귀엽고 아기자기한 것, 반짝이는 것, 각종 공주들을 좋아하더니 나름의 취향과 세계가 만들어졌어요. 아무리 추워도 신어야 하는 파란 구두가 있고, 하고 싶은 머리띠도 있죠. 요즘은 ‘캐치! 티니핑’을 좋아해요(웃음). 임신했을 때부터 아날로그적인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서, 자극적이고 볼거리가 많지 않은 영상은 안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시대의 감성을 가진 아이를 키우는 로망이 있었는데, 현실은 아주 다르더라고요. 제가 그 정도로 부지런한 편이 아니란 것도 깨달았어요. 아이가 쓰는 모든 물건을 신경 써서 고르거나, 미디어 노출에 단호하지 못했어요. 이른 시기에 영상을 시청한 편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티브이를 자주 봐서 각종 캐릭터도 많이 알아요. 그 점이 싫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저도 어릴 때 ‘세일러문’이나 ‘웨딩 피치’ 같은 만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어린 나이에 그걸 본다고 그런 취향의 어른으로 고정되는 것도 아니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이걸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가진 취향만이 우월하다는 생각은 너무 오만한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공주 드레스를 입는 게 싫었지만 막상 입고 돌아다니는 거 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딱 이때만 예쁜 귀여운 모습이잖아요. 최근 ‘캐치! 티니핑’ 콘서트에도 다녀왔어요. 제가 모르는 세계에 초대받아 상상도 못 하던 일상을 경험했어요. 플레이리스트도 알록달록하게 바뀌고 저도 모르게 흥얼거려요(웃음).





부모가 일 때문에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아이들은 일하는 부모를 응원하며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작가님도 서현이의 응원을 많이 받고 있나요?

지금 서현이한테는 제가 거의 아이돌급이에요. 작업실에 가서 그림 그리는 걸 정말 멋지게 생각해 줘요. 제가 만든 것들, 그린 것들 보면 “엄마 진짜 멋있다. 정말 잘했다.” 물건을 고르면 “엄마 이거 너무 잘 샀다.” 제가 하는 모든 행동을 칭찬해 줘요.

온전한 응원을 받으면 자존감도 올라가지 않나요?

맞아요. 저는 외동으로 자랐고 형제가 없으니까 나중에 혼자가 됐을 때 나는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서현이가 더 크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서현이 덕분에 사랑과 외로움이 많이 채워졌어요. 서현이에게 받은 안정감이 엄청나게 크니까 세상에 이렇게 완벽한 내 편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예술가로서의 삶과는 다르게 개인 서윤정의 심리 상태는 지금이 제일 충만한 상태예요.

서현이한테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가 있다면요?

사고는 유연하게 하는데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자라면 좋겠어요. 제가 마음이 물렁물렁한 편이라 사는 게 녹록지 않더라고요. 사람과 좋은 관계 맺는 건 중요하지만 타인에게 정신적인 의존도가 높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독립적인 존재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상생활에서 “지금 아빠는 아빠 하고 싶은 거 하고, 엄마는 엄마 하고 싶은 거 하는 시간이야.”라는 이야기를 해줘요. 함께 머무는 공간에서도 각자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알려주고 싶어요.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나다운 작업에 대해 고민할 텐데요, 예술가의 삶과 부모로 살아가는 일 사이 어떻게 균형을 잡아가고 있어요? 

나로 살면서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을 매일 생각해요. 서현이를 등원시키고 작업실로 가서 오로지 나와 일에만 집중해요. 서현이가 하원하면 씻기고 먹이고 잠시 놀아주면서 부모로서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고요. 솔직히 집에서도 서현이에게 100% 집중은 못하지만 곁에 있는 걸로 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가끔 아이를 중심으로 적절한 배움을 제공하면서 정성스럽게 키우는 분들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아이에게 미안해하기도 하죠. 얼마 전 스물일곱에 아이를 낳아 키운 언니에게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났는지’ 조언을 구한 적이 있어요. 언니가 “나는 그냥 숙제하듯이 했어.” 말해주는데, 정말 와닿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무조건 해야만 하는 것들을 숙제하듯이 하고 그 안에서 아이랑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찾으려고요.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을 최대한 섬세하게 느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가족과 나, 일의 균형을 맞추는 게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일 같아요. 

부모가 되고 나서 원래 가진 모습들이 지워지는 게 불안했어요.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고심하여 고르고,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찾아 듣고, 내면의 스토리를 공부하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거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는 핑계로 다 귀찮아진 거예요.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서윤정 029 대해서 둔해지는 느낌이 싫었어요.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육체적인 노동과 힘듦보다 정신적으로 도태된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것도 있고, 이 집을 만들면서 해소된 부분도 있어요. 작업에 대한 조급함은 없는데, 표현하고 싶은 단어도 잘 안 떠오르는 걸 보면서 뇌가 노화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들어서도 세련된 미학을 가지고 유연한 사고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죠. 그래서 집이 만족스럽지만 필사적으로 작업실에 가요. 내 손으로 그리고 만든 결과물을 볼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네.’라는 만족감이 삶의 원동력이거든요. 보이는 즐거움을 만들어 낼 때 정말 행복해요.

그리는 일이 치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요즘 나를 기쁘게 하는 일, 관심사는 뭐예요?

부모가 되고 나서 원래 가진 모습들이 지워지는 게 불안했어요.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고심하여 고르고,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찾아 듣고, 내면의 스토리를 공부하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거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는 핑계로 다 귀찮아진 거예요.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서윤정 029 대해서 둔해지는 느낌이 싫었어요.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육체적인 노동과 힘듦보다 정신적으로 도태된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것도 있고, 이 집을 만들면서 해소된 부분도 있어요. 작업에 대한 조급함은 없는데, 표현하고 싶은 단어도 잘 안 떠오르는 걸 보면서 뇌가 노화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들어서도 세련된 미학을 가지고 유연한 사고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죠. 그래서 집이 만족스럽지만 필사적으로 작업실에 가요. 내 손으로 그리고 만든 결과물을 볼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네.’라는 만족감이 삶의 원동력이거든요. 보이는 즐거움을 만들어 낼 때 정말 행복해요.

최근 생긴 꿈이 있다면요?

부모가 되고 나서 원래 가진 모습들이 지워지는 게 불안했어요. 혼자 책 읽고 글 쓰고, 보고 싶은 영화를 고심하여 고르고,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찾아 듣고, 내면의 스토리를 공부하는 걸 정말 좋아했는데, 이제는 그거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는 핑계로 다 귀찮아진 거예요. 훨씬 더 예민하고 섬세하게 할 수 있는 것들에 서윤정 029 대해서 둔해지는 느낌이 싫었어요. 아기를 키우며 느끼는 육체적인 노동과 힘듦보다 정신적으로 도태된다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것도 있고, 이 집을 만들면서 해소된 부분도 있어요. 작업에 대한 조급함은 없는데, 표현하고 싶은 단어도 잘 안 떠오르는 걸 보면서 뇌가 노화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들어서도 세련된 미학을 가지고 유연한 사고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죠. 그래서 집이 만족스럽지만 필사적으로 작업실에 가요. 내 손으로 그리고 만든 결과물을 볼 때 살아 있음을 느껴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들 수 있네.’라는 만족감이 삶의 원동력이거든요. 보이는 즐거움을 만들어 낼 때 정말 행복해요.

서윤정 작가의 역사를 하나의 기록이라고 한다면, 마지막 장에는 어떤 그림을 담고 싶어요?

그동안 살고 싶은 집, 갖고 싶은 집을 많이 그렸잖아요. 그중 하나는 실현이 되어서 거기에 제 모든 작업이 펼쳐져 있으면 좋겠어요. 빛이 많이 들어오는 흰색 큐브 공간에 제 작업들이 뮤지엄처럼 놓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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