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여기에 하브루타의 핵심이 있다. 먼저 제대로 된 하브루타를 하기 위해서는 하브루타를 통해 공부하는 교재나 텍스트가 이른바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좀더 순화해서 말하면 ‘나는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종교 경전이나 역사, 문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 텍스트여야 한다. 어떻게 부모와 자녀가 같은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며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많은 가정이 보편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는 주제인 우리 역사를 예로 들어보자. 아래는 고구려 주몽 이야기를 바탕으로 초등학교 4학년 아이와 대화를 나눈 내용이다.
선생님(부모) 오늘 주몽 이야기를 보면서 제일 인상 깊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니?
수진 주몽이 너무 유명해지니까 형들이 시기해서 말 보는 일을 맡겼는데, 그 일을 잘 견디고 오히려 좋은 기회로 만들어서 나중에 나라를 만든 거요.
선생님(부모) 그래 나도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혹시 수진이는 지금까지 지내면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 때가 언제였니?
수진 음, 글쎄요? 아, 엄마가 빨래 개라고 시킬 때요.
선생님(부모) 아, 우리 수진이는 엄마가 빨래 개라고 시킬 때가 힘들었구나. 그런데 엄마를 도와서 빨래 개는 건 좋은 일인데 왜 그때가 힘들었을까? 하기 싫은데 시켜서 그랬니?
수진 아니요. 하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엄마가 짜증을 내면서 빨래 개라고 자주 그래서요.
선생님(부모) 엄마가 짜증 내면서 무언가를 시킬 때가 힘들구나. 그럼 엄마는 왜 짜증을 낸다고 생각하니?
수진 저나 제 동생이 말을 안 들어서요.
선생님(부모) 수진이랑 동생이 말을 안 들을 때가 많아서 엄마가 짜증이 나는구나. 그러면, 수진이라도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엄마가 짜증을 좀 덜 내시지 않을까?
수진 네. 그럴 것 같아요.
선생님(부모) 그래. 그럼 수진이가 가능한 엄마 말을 잘 듣고 엄마도 수진이에게 친절한 말로 부탁하면, 수진이가 힘들게 생각하는 때가 훨씬 줄어들겠구나.
수진 그리고 동생이 까불 때가 힘들어요. 나이도 어린데 언니라고 안 부르고 “야!”라고 하고 말을 안 들어요.
선생님(부모) 아, 수진이는 동생이 “야!”라고 부르고 말을 안 들으면 힘들구나. 그럼 그럴 땐 어떻게 하니?
수진 저도 화를 내고 자주 싸워요.
선생님(부모) 그래 그렇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나는 최근에 다른 사람들이 내 감정을 해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할 때 대응하는 좋은 방법을 하나 배운 게 있는데, 수진이도 한번 적용해 볼래?
수진 그게 뭔데요?
선생님(부모) 바로 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방법이야. 예를 들어, 네가 지나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야 꼬마야!”라고 무례하게 부르면, “저 꼬마 아니거든요.”이렇게 화를 내기보다는 친절하게 “아저씨 혹시 저를 꼬마라고 부르셨어요?”라고 그대로 반복해주는 거지.
수진 그럼 그 사람이 더 화내지 않나요?
선생님(부모)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친절하게 진심을 담아 얘기해야지. 핵심은 저 사람이 나한테 던진 말을 그대로 받지 말고, 다시 돌려주는 거야. 나는 이런 식으로 최대한 다른 사람이 한 부정적인 말에 영향을 받지 않는 훈련을 하고 있는데, 수진이도 한번 연습해보면 좋을 것 같아.
수진 네, 한번 해볼게요.
이 대화를 보면 주몽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 나의 어려움을 나누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로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가 묻어 두던 마음속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다. 이런 대화 양식을 3자 대화라고 한다. 대화 양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일방적인 훈계와 잔소리다. 둘째는 일상에 대한 소소한 수평적인 대화인데 이런 대화는 5분을 넘기기가 힘들다. 마지막이 위에서 본 것처럼 하나의 책이나 주제를 놓고 서로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3자 대화다. 이런 대화를 많이 하면 잔소리나 훈계 없이도 아이들이 스스로 삶의 방향성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유대인은 가정에서 이런 대화를 실천한 것이다.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옛 명문 사대부 가정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집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논어를 읽었다. 아버지는 바깥일을 보고 돌아와 아들에게 오늘 공부한 내용을 외워보라고 하고, 아들이 공부한 내용을 주제로 토론을 한다. 그 이야기 가운데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며 부모와 자녀가 서로 소통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중심이 없다. 물론 부모부터가 그런 교육을 받아보지 않았기에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연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미래 교육에 대한 대비도, 가정에서의 올바른 부모-자녀간의 소통도 힘들기 때문이다.
교실현장에서도 세부 과목 공부에 하브루타를 적용하기 전에 먼저 토론해야 할 주제가 바로 ‘나는 왜 공부하는가?’이다. 왜 국어를 해야 하고, 왜 영어를 해야 하고, 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답을 먼저 찾아야 한다. 이런 질문은 결국 나는 왜 살고, 왜 공부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인문학적인 질문의 연습이 바탕이 된 다음 실용 지식 차원의 공부에서도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고, 1:1 로 토론하는 하브루타식 방법론이 빛을 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