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생쥐 ‘스튜어트’가 인간인 리틀 가족에게 입양되어 진짜 가족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스튜어트 리틀>이다. 그때는 몇 날 며칠 그 영화 이야기만 할 만큼 빠져 있었는데, 지금은 스튜어트가 하얀색이었다는 것, 안경 쓴 모습이 귀여웠다는 것, 고양이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 정도만 기억난다. 그리고 또 하나, 아빠와 손을 잡고 극장에 간 기억은 선명하다. 극장까지 간 걸 보면 내가 꼭 보고 싶은 영화라고, 티브이 말고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고 졸라댔을 확률이 높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줄을 서서 표를 끊고, 팝콘을 사고 영화 시작 전에 와그작와그작 반 통을 비워냈을 것이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처음 맡아본 극장 냄새와 처음 앉아본 극장 의자, 공간 전체를 울리는 소리는 기분좋게 생경했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아빠와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상영 내내 귓속말로 “아빠 쟨 왜 저렇게 쟤를 괴롭히는 거야?” “스튜어트가 정말 힘들겠다.”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걸 꾹 참았기 때문에 나는 극장 불이 켜지자마자 두서없이 아무 말이나 떠들어댔다. 우리가 다시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런 말도 했다. “아빠. 나도 강아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주제와는 저만치 동떨어졌지만 평소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걸 알았던 아빠는 차근차근 물었다. 왜 강아지 동생을 갖고 싶은지, 강아지 동생이 생기면 네가 얼마나 많은 일들을 책임지고 해야하는지. 아빠에게 설득되어 강아지 동생은 나중에 갖기로 일단락되었지만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된 대화는 꼬리의 꼬리를 물고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내 엉뚱한 질문들에 아빠는 모든 걸 바로 알고 대답해 주었을까? 아빠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나는 단번에 이해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우리만의 정답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대화를 통해 유의미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이와 볼 영화를 고르고, 극장이든 거실이든 일단 함께 보면 된다. 영화가 끝나고 머릿속에 한 장면 한 장면이 아주 생생하게 남아 있을 때, 툭하고 살짝만 건드려 주면 아이는 머금고 있는 말을 하나둘 뱉어낼 것이다. 그리고 다 자라서도 그 대화를 아주 조금은 기억할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