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에는 다른 낮과 밤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까운 거리의 동네라도 모든 게 내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눈 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것이 존재한다. 이 사실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 낯선 땅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저 책에나 나 오는 동화 같은 이야기다. 나의 첫 여행은 캐나다였다. 그곳에서 이 기분을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 <더 빌리지>를 보게 되었 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숲속의 작은 마을. 보는 내내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줄로만 알았던 이 영화는 현대 시대였다. 그 마을은 현실을 부정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마을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알 리 없는 현실 세계. 단 한 명이 마을 밖으로 나왔을 때 놓인 지금의 세상은 새로웠다는 표현을 넘어서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유명한 나라와 도시가 아니더라도 지도에 보이는 점같이 작은 섬부터 들어보지 못했던 도 시의 이름을 찾게 되었다. 틈틈이 다녔던 여행 중에 아이와 함께한 첫 여행을 떠올려본다. 아이는 말을 할 줄 몰랐던 시기였다. 그때의 여행을 기억해 내지 못하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감정을 간직하게 된 일이다. 차로 넓은 대지를 가로지르고 손에 잡힐 듯한 구름 을 보고 같이 환호하며 뛰었던 기억. 우리가 뛰어다녔던 들판의 이름은 아이도 나도 알지 못하지만, 그저 아주 넓었고 넘어 져도 상관없는 땅을 기억하고 있다. 나의 경우는 아이와 여행에서는 꼭 인근 시골 마을과 대도시를 일정에 함께 넣곤 한다. 도시에서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테고, 시골에서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된다. 도시에서 빡빡하게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다니다 시골에서는 계획도 없이 돌아다닌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나는 삶의 유연함을 배웠다. 아무 기억이 없을 것 같 았던 아이가 얼마 전 제주도 해변에 갔을 때 이런 말을 내뱉었다. “엄마 여기는 피피섬 처럼 그렇다.” 아, 너도 피피섬을 기 억하고 있구나. 피피섬 해변에서 원숭이가 남편의 수박 주스와 옥수수를 뺏어 먹었다. 몹시 놀랐던 아이는 원숭이를 볼 때 마다 그날의 일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집이 아닌 곳에 머물면서 집을 그리워할 줄도 알게 되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스스로 용돈을 모으기도 하고, 가고 싶은 나라를 먼저 이야기하기도 한다. 지구의 반대편 혹은 가깝거나 낯선 곳에서 우리는 일상과 다른 상황에 놓이곤 한다. 여행을 계획하고 고민하고 경험 하는 과정에서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와 환경뿐만 아니라,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게 되는 것이다. 아이와의 여행은 부모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고생스럽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큼의 기억을 함께 간직하기 위 해 오늘도 어디를 떠날지 지도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