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렸을 적 놀이터를 생각해 보자. 놀이기구가 없더라도 동네 여기저기 아이들이 몰려 있으면 거기가 놀이터였다. 달리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면서 놀았다. 미끄럼틀이나 그네는 놀이하다 쉬는 시간에 타는 기구에 불과했다. 그때 놀이터 주변으로 둘러싼 무궁화 꽃도 기억난다. 일부러 모든 놀이터는 국화인 무궁화 꽃을 심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요즘 놀이터에 가보면 사라진 건 무궁화 꽃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없다. 아이들이 잘 찾지 않는 놀이터는 황폐해지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사라져 간다. 동네 여기저기 카페는 날마다 늘어나는데, 아이들이 놀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놀이터를 찾으면 “안전하게 놀아라.”라고 말하는 듯 모든 장치는 어른 기준에서 세워져 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도 자주 발생한다. 집에서는 층간 소음으로 조용히 놀아야 했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또 조용하고 안전하게 놀아야 한다.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규칙을 지키느라 아이들은 제대로 소리 내 뛸 수가 없다. 조용히 놀던 아이는 급기야 이렇게 말한다. “재미가 없다. 나는 언제 놀 수 있느냐.” 아이는 사실 제대로 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슬픈 일은 뛰어놀 시간조차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순천을 비롯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찾아다녔다. 현란한 모양의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했다. 미끄럼틀을 몇 번 내려오고, 그네를 왔다 갔다 타더니 집에 가자고 한다. 오히려 아이가 오래 머물었던 놀이터는 무언가가 별로 없는 곳이었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단연 모래였다. 여러 방법으로 변형할 수 있는 모래를 가지고는 종일도 놀았다. 모래는 변형할 수 있다. 정성 들여 쌓았다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고, 땅을 파보기도 한다. 주체가 되어 놀이할 수 있는 좋은 재료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양보하고 싸우기도 하고 같이 어울리고 싶어 먼저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엄마표 놀이라는 말은 사실 틀린 말이다. 어른이 주체가 되는 건 아이에게 놀이가 될 수 없다.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알고 뜻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그리고 사라진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를 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