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 vol.1 CLOTHES

Our First Home 

글·사진  김태연

OUR FIRST HOME 

한 지붕 아래 사람들 

나는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마을 ‘보라보라’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도 형편에 맞춰서 집을 구하다 보니 주로 오래된 집에, 친구들과 함께 살았다.

나무로 지어진 집도, 야자수에 둘러싸인 집도 있었다. 자연 속의 나무집이라니.

어딘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연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도마뱀, 모기, 개미, 거미, 나무를 갉아 먹고 사는 이름 모를 벌레들도 들끓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집들을 꽤 오랫동안 떠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한 지붕 아래 사람들. 이건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포에 할머니 

똑. 똑. 똑. 어디선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며칠째 계속되는 열대야로 깊게 잠이 들지 못해서인지 바로 눈이 떠졌다. 남편은 곤히 자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거실로 나왔다. 옆방의 디에고도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유리문 바깥에 머리가 희끗한 여성이 꽃으로 만든 화관을 쓰고 서 있었다. 역시. 집주인이자 이웃사촌인 포에 할머니였다. 현관문을 열었다. 벌써 따뜻해지기 시작한 아침 공기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포에 할머니도 총총총 따라 들어왔다.

“Bonjour, ça va?”

양 볼을 번갈아가며 뽀뽀하는 인사를 나누었다. 포에 할머니의 볼에 가까이 갈 때마다 꽃 냄새가 났다. 마당에서 직접 땄다는 망고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포에 할머니는 집을 쓱 둘러보았다. 양손을 모아 얼굴 옆에 붙이고 아직 자냐는 제스처를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에 할머니는 눈썹을 쓱 올리더니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모두 일어나.” 디에고도 남편도 졸린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두 사람도 이렇게 시작되는 하루가 익숙해진 것 같았다.

포에 할머니는 그들의 두 볼에도 뽀뽀를 해주며 잔소리를 쏟아냈다.느낌만으로도 일찍 일찍 일어나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뜬 디에고가 망고를 들더니 주물럭거렸다. 위쪽의 껍질을 조금 벗겨내고, 그대로 아이스크림처럼 빨아 먹었다. 남편도 디에고를 따라 했다. 포에 할머니가 내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손주들이 따로 없었다.포에 할머니는 자주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노크 소리에 우리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하루는 바나나를 가져다주었다. 하루는 파파야를, 또 하루는 꽃으로 만든 화관을 가져다주었다.

모두 그녀의 손으로 마당에서 직접 키운 것들이었다. 디에고는 여기가 대도시라면 포에 할머니 같은 사람을 경계했을 거라고 했다. 알 것 같았다. 타인이 주는 친절을 그대로 믿기에는 우리 모두 각자의 함정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너무나 외딴섬이었다. 가족을 뒤로하고 떠나온 곳. 게다가 포에 할머니는 또렷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 눈은 벌써 탁해지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내 곱절의 생을 살고도 그러지 않았다. 나와 남편 그리고 디에고는 포에 할머니의 집에 자주 갔다. 설탕을 빌리러. 올리브유를 빌리러. 바늘을 빌리러.

포에 할머니야말로 우리를 경계해야 할 판이었다. 두 집은 그만큼 가까웠다. 몇 걸음이면 충분했다. 내 방 창문에서도 그녀가 보였다. 꽃을 쪼려고 하는 닭을 막는, 천 조각들을 바느질하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을 긁어모으는 그녀가 보였다. 혼자 힘으로 오래된 집을 천천히 일구어가는 모습은, 스스로도 질려버릴 만큼 게으른 나조차 움직이게 만들었다. 미드를 보던 노트북을 닫고, 포에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망고를 우유에 갈아서, 파파야 잼을 만들어서, 말린 꽃을 유리병에 담아서 갔다. 그러면 그녀는 시원할 만큼 또렷한 그 눈으로 웃으며 나를 바라봐주었다. 한번은 포에 할머니가 무언가를 설명해주는데 전혀 알아듣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통역을 해줄 수 있는 디에고와 남편도 출근하고 없었다. 그녀는 더 느리고 더 크게 말했다.

“멍! 멍! 멍ㄸ…. 머엉뜨!”

멍멍이라.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강아지의 울음소리뿐이었다. ‘미국 강아지는 바우 와우라고 울고 프랑스 강아지는 우프 우프라고 우니 그것도 아닐 텐데’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포에 할머니가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그곳에는 초록색의 작고 울퉁불퉁한 풀잎들이 자라고 있었다. 포에 할머니는 잎 하나를 따서 손으로 문지르더니 내게 향을 맡아보라고 했다. 알싸하게 단 냄새, 민트였다. 아, 멍뜨는 민트였구나. “모히또!”라고 외쳤다. 포에 할머니는 또 내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우리가 민트를 가득 따서 모히또를 만들어 먹은 건 당연한 결과였다. 난 사이다를 섞고 포에 할머니는 탄산수를 섞었다. 조금 취하자 포에 할머니가 하는 말들이 더 잘 들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열대야에도 불구하고 깊게 잠들었다

우리만 아는 농담 

디에고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름 아닌 뒷모습이다. 조그만 주방에 서서 파스타를 만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토마토를 으깨던 그의 뒷모습. 디에고와 처음 가까워진 공간이 주방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주방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우리 부부는 요리에 서툴러서 주방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기구가 거의 없는 작은 주방에서 칼이나 가위를 들고 여러 조리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디에고가 말하고 우리는 들었다. 칼 잡는 법, 양파 써는 법, 마늘 껍질 빨리 까는 법을 모두 그에게 배웠다. 디에고는 우리와 주방을 공유한, 첫 하우스메이트였다. 다 같이 파스타를 먹기로 한 어느 날이었다. 면을 삶으려고 올려둔 물이 한참을 기다려도 끓어오르지 않았다. 불이 약한가 보려는데 디에고가 냄비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말릴 틈도 없이 쓱 넣더니 쓱 꺼냈다. 너무 뜨겁다며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팔짝 뛰었다. 남편은 서둘러 냉동고에서 얼음을 꺼내왔다. “위험하게 왜 그랬어?” 손으로 얼음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대답했다. “얼마나 뜨거운지 궁금해서….” 정적이 흘렀다. 요리왕 디에고가 저런 아슬아슬한 행동을 하다니. 그날 결국 우리가 파스타를 먹었는지, 먹지 않았는지 지금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들 조금씩 놀라고 그다지 납득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희한한 건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니까 우리가 더 친해질수록 이 일이 우리 안에서 점점 더 웃긴 기억이 되어갔다는 사실이다.

나중에는 누구 하나가 물만 끓여도 다 같이 걷잡을 수 없이 웃는 지경이 돼버렸다. 한 명이 물을 끓이다 웃으면, 다른 한 명이 지나가다가 “아 뜨거운 물” 하며 따라 웃게 돼버리는 것이었다. 남들이 듣기엔 너무나 시답잖은, 우리만 아는 농담이었다.언제나 여름인 곳에 우리들의 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에어컨이 없는 대신 바로 앞에 바다가 있었다. 매일같이 바다에 갔다. 가끔은 다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주로 따로 떨어져서 각자 놀았다. 나는 책을 읽었다. 남편은 수영을 했다. 디에고는 일광욕을 했다. 곧 보라보라 섬에 놀러 오는 여자친구에게 섹시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구릿빛 피부를 만드는 데 열심이었다. 우리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바다에 함께 나갔다. 디에고의 여자친구가 놀러 왔을 때, 그 여자친구가 돌아가자마자 디에고를 찼을 때, 그래서 디에고가 텅 비어버렸을 때- 나와 남편이 시청에서 결혼 서약을 했을 때, 이렇게는 못 산다고 엉엉 울다가 어이없게 화해했을 때-

그 모든 때에 서로가 있었다. 같이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끔은 서로가 미웠고 때로는 서로를 견뎠다. 하지만 디에고가 부모님의 바람대로 섬을 떠나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날 우리는 모두 울었다. 한집에 산다는 것은 그런 거였다. 서로의 멋진 모습과 추한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나누는 것. 벌써 디에고를 못 본 지 여러 해가 지났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나와 남편은 두 번이나 이사를 더 했고, 디에고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보라보라를 떠난 다음 해, 디에고에게 엽서가 왔다. 우리도 엽서를 보냈다. 지금은 페이스북 메시지도 잘 남기지 않는다. 서로의 사진에 가끔 ‘좋아요’를 눌러줄 뿐. 하지만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먼 훗날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에게는 우리만 아는 농담이 있기 때문이다.

휴일이 없는 삶 

“미안. 빵이 다 팔렸어.” 조프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텅 빈 진열대를 보고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었다. 오전 열한시였다. 내 뒤로도 손님들은 계속 들어왔다가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다. 세상과 동떨어진 이 작은 섬에서도 마침내 제대로 된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렌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모두 며칠째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조프리의 빵은 이미 수없이 먹어봤다. 그는 남편이 프랑스에 살았을 때부터 알아온 동생이자, 내게는 남편 다음으로 섬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이며, 지금은 우리 부부와 같은 건물을 위아래로 나누어 쓰고 있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조프리가 빵집을 열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우리 집에는 빵오쇼콜라, 크루아상, 곡물이 가득 들어간 바게트가 끊이질 않았다. 매일 시험 삼아 구워낸 빵을 가져왔다. 맛이 갑자기 나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섬의 기후에 적응 중이라고 했다. 습도도 온도도 물도 프랑스와 다르다고 했다. 그곳과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재료를 써도 빵 맛이 다르게 구워진다고 했다. 힘들겠다는 염려에 그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벌써 몇 년을 살았는데 나는 섬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던 것 같아. 이제야 조금 마주 보기 시작한 거지.”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밀가루가 잔뜩 묻어있었다. 일부러 팬티가 보이게 입은 반바지에 말이다. 이 옷차림과 근면 성실함이라는 단어가 한 사람에게 모두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재밌었다.그 후에도 숱한 실패를 겪고 나서 겨우 빵집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며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매장 안에 진열된 빵을 주욱 보고,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을 골라서, 제값을 주고 사 오고 싶었다. 그런데 오픈하자마자, 빵이 남아나질 않는 빵집이 되어버렸다. 대성공이었다.

기뻤고, 자랑스러웠고, 뜻밖에도 조금 쓸쓸했다.한밤중에 남편이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조프리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빵을 굽고 있으니, 아직 안 자면 놀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새벽 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프리의 업무 시간이었다. 아침에 맛있는 빵을 팔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반죽하고 발효시켜야 한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빵이 구워지는 공간도,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조프리도 궁금해서 몸을 일으켰다.어둠이 깊게 깔린 밤, 빵집에서만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멀리서 본 조프리는 유리창 안에서 혼자였다. 테이블에 밀가루를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일하는 삶이었다.

나는 평생을 자영업자의 딸로 자랐고, 남편도 자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휴일에도, 주말에도, 심야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 삶. 유리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조프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하얀 반죽을 주욱 펼쳐서 알맞은 크기로 나누고 있었다. 모자를 거꾸로 쓰고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면서…. 그다웠다. 웃음이 났다. 어쩌면 조프리는 일하는 삶도 자유분방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하여도 억울할 건 딱히 없으려나…. 누구의 삶이든 축제가 끝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니까.갓 구워낸 그의 빵은 오늘도 맛이 좋았다.

누구의 삶이든 축제가 끝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니까.

070-4150-2017

wee.enough@gmail.com

Terms of Use

Privacy Policy

(주)위아이너프 | CEO Hyunjee Kim  

14, Yonsei-ro 2ma-gil, Seodaemun-gu, Seoul

PRIVACY OFFICER Hyunjee Kim 

BUSINESS NUMBER 439-86-03136 439-86-03136 

ONLINE SALES NUMBER 2024-서울서대문-0387

© 2025 wee. All rights reserved.

(주)위아이너프

CEO Hyunjee Kim

14, Yonsei-ro 2ma-gil, Seodaemun-gu, Seoul
BUSINESS NUMBER 439-86-03136
ONLINE SALES NUMBER 2024-서울서대문-0387

 2025 wee.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채널 채팅하기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