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빵이 다 팔렸어.” 조프리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텅 빈 진열대를 보고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었다. 오전 열한시였다. 내 뒤로도 손님들은 계속 들어왔다가 아쉬운 얼굴로 돌아섰다. 세상과 동떨어진 이 작은 섬에서도 마침내 제대로 된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렌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모두 며칠째 빈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조프리의 빵은 이미 수없이 먹어봤다. 그는 남편이 프랑스에 살았을 때부터 알아온 동생이자, 내게는 남편 다음으로 섬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이며, 지금은 우리 부부와 같은 건물을 위아래로 나누어 쓰고 있는 이웃이기 때문이다. 조프리가 빵집을 열기로 결정하면서부터 우리 집에는 빵오쇼콜라, 크루아상, 곡물이 가득 들어간 바게트가 끊이질 않았다. 매일 시험 삼아 구워낸 빵을 가져왔다. 맛이 갑자기 나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섬의 기후에 적응 중이라고 했다. 습도도 온도도 물도 프랑스와 다르다고 했다. 그곳과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재료를 써도 빵 맛이 다르게 구워진다고 했다. 힘들겠다는 염려에 그는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벌써 몇 년을 살았는데 나는 섬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던 것 같아. 이제야 조금 마주 보기 시작한 거지.”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밀가루가 잔뜩 묻어있었다. 일부러 팬티가 보이게 입은 반바지에 말이다. 이 옷차림과 근면 성실함이라는 단어가 한 사람에게 모두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 재밌었다.그 후에도 숱한 실패를 겪고 나서 겨우 빵집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으며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매장 안에 진열된 빵을 주욱 보고,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을 골라서, 제값을 주고 사 오고 싶었다. 그런데 오픈하자마자, 빵이 남아나질 않는 빵집이 되어버렸다. 대성공이었다.
기뻤고, 자랑스러웠고, 뜻밖에도 조금 쓸쓸했다.한밤중에 남편이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조프리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빵을 굽고 있으니, 아직 안 자면 놀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새벽 두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프리의 업무 시간이었다. 아침에 맛있는 빵을 팔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반죽하고 발효시켜야 한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빵이 구워지는 공간도,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조프리도 궁금해서 몸을 일으켰다.어둠이 깊게 깔린 밤, 빵집에서만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멀리서 본 조프리는 유리창 안에서 혼자였다. 테이블에 밀가루를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일하는 삶이었다.
나는 평생을 자영업자의 딸로 자랐고, 남편도 자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휴일에도, 주말에도, 심야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 삶. 유리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조프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하얀 반죽을 주욱 펼쳐서 알맞은 크기로 나누고 있었다. 모자를 거꾸로 쓰고 음악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면서…. 그다웠다. 웃음이 났다. 어쩌면 조프리는 일하는 삶도 자유분방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하여도 억울할 건 딱히 없으려나…. 누구의 삶이든 축제가 끝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니까.갓 구워낸 그의 빵은 오늘도 맛이 좋았다.